남자란 무엇인가 – 안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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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출판사

<남자란 무엇인가>, 안경환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 (2016. 11. 30.)

솔직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자기 저서에 쓴 문장이라고 인용된 글귀들을 트위터에서 봤을 때요. ‘술과 여자는 분리할 수 없는 보완재’, ‘폭력을 동원해서도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게 사내 생리’ 등등, 진보적 법학자로 잘 알려져 있고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하신 분이 쓴 글이라고 보기에는 참 저렴하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사회 문제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더라도 성 의식 만큼은 후진 경우를 숱하게 봐 왔으니까요. 청와대 행정관으로 재직 중인 탁현민 씨의 책 <남자 마음 설명서> 같은 경우도 그랬죠. 여성을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 하면서 ‘남자란 원래 그런 거니 우리 까놓고 얘기 보자’는 투의, 참으로 동물스러운 글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문제의 <남자란 무엇인가>를 바로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전체 구성은 4부로 나뉘어져 있고, 총 18장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1부는 ‘남자의 본성’입니다. 먼저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을 뇌과학 연구 결과 등을 인용하며 정리합니다. 그런 다음 남자들 사이의 경쟁 심리와 권력에 목매는 속성, 남자들만 사람 취급하는 한국의 뿌리깊은 종중(宗中) 문화 등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지요.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남자도 화장하는 세태를 들며 남녀의 젠더 구분이 사회학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읽고 났을 때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크게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저자는 법과 사회 문제에 대한 평소 지론이나 잘 아는 분야가 아니면,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인용하면서 논란을 피하려 합니다. 논의 전개 방식 또한 남자의 본성에 대한 이러저러한 주장과 연구 결과가 있지만, 이제는 남자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식이어서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구절들이 있는 부분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읽어 나갔습니다. 2부는 ‘남자와 결혼’입니다. 여기서는 역사적으로 남성이 섹스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품어 왔고, 그로 인해 벌어진 성매수와 강간 등을 저질러 왔음을 명시적으로 밝혀 나간 후 대안을 제시합니다. 인용은 여전히 많아서 다소 난삽하게 느껴집니다.

2부에 들어서면 문제의 구절 중 하나인 ‘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그 샘물에 몸을 담아 거듭 탄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내의 염원이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체 논지를 이어가는 와중에 그것이 남자의 일반적인 욕망임을 서술하는 문장에 가깝습니다. 딱히 저자의 주장이 이것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2부 전체에서 남성의 동물적 욕망이 존재함을 인정하되, ‘남성은 원래 그런 존재니 이해를 좀 해 주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남자들이 더이상 동물의 수준에 머무르지 말고 고매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런 점에서 ‘동물적 본능을 살려 다같이 동물이 되자’는 식의 얘기를 풀어 놓은 탁현민 씨의 책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2부 5장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박원순 시장이 일부 기독교계의 반대에 눌려, 소수자 차별 금지를 명시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채택하지 않은 사실을 강하게 질타한 것은 여러모로 눈에 띄는 부분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저는 어쩌면 안경환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전체 문맥을 무시하고 문장만 떼어낸 데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된 구절들은 더 남아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3부 ‘남자와 사회’는 굳이 남자와 연관지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 장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고찰, 징병제 대신 모병제를 고려할 때라는 주장, 편협하게 변질될 수 있는 종교적 광신에 대한 경계, 사이버시대에 바람직한 삶의 모습 등에 대한 저자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갑니다. 책 전체에서 그나마 가장 읽기 편하고 집중이 잘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 4부 ‘남자의 눈물’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될 만한 부분입니다. 일단 여기에 속한 글들은 죄다 논지가 불분명합니다. 앞선 글들이 그나마 결론은 있는 글들이라면, 여기에 실린 글들은 삶의 여러 측면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 남자라는 동류에 대한 연민을 표시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주장하는 바는 뚜렷하지 않고 저자의 의견과 인용문들이 뒤섞여 있지요.

좀 더 적극적으로 의도를 짐작해 보자면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요즘 남자들이 여러모로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세상이 이전 세대와는 바뀌었다는 걸 인정하고 자기 욕망과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해야 한다는 거죠. 젊은 세대들에게는 인생 선배로서 하는 충고, 그리고 같이 늙어가는 장년, 노년층의 남자들에게는 약간의 신세한탄이 섞인 조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남자들에 대한 연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된 원인으로 여성과의 권력 관계가 변화되었음을 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논지대로라면 요즘 남자들이 불행하고 힘든 이유는 예전처럼 여자들이 찍소리 못하고 순종하던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되는 거니까요.

특히 언론에 의해 문제 제기된 구절들이 가장 많이 포함된 4부 3장과 4장은 남자인 제가 봐도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술자리에는 여자가 꼭 있어야 하고 자기 세대 중엔 술이 들어가야 섹스가 가능한 사람이 많다는 둥,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수그러들지 않는 성욕 때문에 서글프다는 식의 글들은 많이 거슬렸습니다.

사실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전체를 놓고 보면 안경환 후보자는 또래 남성들과 비교해서는 훨씬 진보적이고, 전 연령대를 통틀어 평균적인 한국 남성과 비교했을 때도 더 나은 의식 수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했던 것처럼 탁현민 씨 같은 부류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전체 맥락상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식의 해명에 그친다면 안 된다고 봅니다.

먼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부 책 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합니다. 벌써부터 어떤 지지자들은 저자의 논지를 잘못 받아들여 ‘남자는 원래 성욕을 주체할 수 없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라고 하면서 후보자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후보자 본인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 직접 교정을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후보자 자신은 중장년층 남성 독자를 겨냥해서 쓴 글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견해가 어떤 독자들에게 불쾌감과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 역시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청문회 석상을 빌려서라도 스스로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계속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장관 인사 발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반대 세력들은 자질에 대한 갖가지 의혹을 쏟아 내고, 열성 지지자들은 장관 후보자들을 열심히 방어하는데 힘을 쓰고 있지요.

언뜻 소모적인 논쟁인 것 같지만, 국민의 정치 참여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돌다리도 두드려 볼 수도 있습니다. 안경환 후보자의 경우도 화려한 경력 뒤에 가려진 성 의식에 관한 문제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공직 후보자에 대한 논란과 적절한 검증이 계속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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