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걸 La fille inconnu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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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AUD)

2017. 5. 3. 개봉

죄책감은 양심의 발로입니다. 법적으로 문제 되는 일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자기 양심의 거울에 비춰 봤을 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생겨나는 불편한 감정이지요.

이것은 또한 온전히 과거의 일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후회할 수도 없고 미안해할 수도 없습니다. 일을 저지르고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런 감정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 영화 <언노운 걸>의 주인공인 동네 병원 의사 제니(아델 에넬)도 그랬습니다. 그녀는 진료 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아온 흑인 소녀를 돌려 보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 이 소녀가 근처 공사장에서 실족사한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병원 문을 열어 주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 생각한 제니는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큰 병원에서의 자리도 마다하고 동네 병원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그녀는, 소녀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이름이라도 알아내어 나중에라도 가족들에게 사고 소식을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합니다. 법적 책임도 없는 일에 죄책감을 갖고 자신의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는 것, 경찰도 신경 쓰지 않는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제니는 답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 다르덴 형제는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언제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심과 인간애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아들>(2002)에서는 자기 아들을 죽인 소년에게 직업 교육을 해야 하는 중년 남자의 딜레마를, <더 차일드>(2005)에서는 자신의 갓난 아이를 돈을 받고 팔았다가 다시 돌려받으려 하는 젊은 아빠의 고뇌를, <자전거 타는 소년>(2011)에서는 아버지의 존재를 갈구하는 외로운 소년에게 끝까지 희망이 되어 주기로 마음먹는 위탁모의 모습을 그려 낸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잇속만 차리려 들었다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수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딛고 끝내 해내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다르덴 형제는 언제나 이런 모습을 담담히, 그리고 집요하게 따라 잡으면서 진정한 인간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선사했습니다.

이 영화 <언노운 걸> 역시 그런 주제 의식과 작업 방식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입니다. 이름 모를 소녀의 죽음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려 했던 주인공 제니의 노력은, 결국 차갑게 닫혀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갖고 있던 진실을 한 조각씩 꺼내 보이게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이 가진 죄책감의 다양한 양상은 곧 우리 자신의 내면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여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기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고 책임질 일이란 전혀 없다고 믿는 비양심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양극단의 중간에는 순간적으로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금세 코앞에 닥친 자기 삶의 문제에 파묻히기 일쑤인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회피하는 것은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며, 갈등 상황 자체를 껄끄럽게 여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마음 속 진실이 머릿 속에 떠올라 잠을 못 이루고, 진실을 털어 놓을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들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런 생각들을 어찌어찌 망각의 강물에 떠내려가게 놔 둬 버립니다.

하지만 영원히 잊고 지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에게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는 한 죄책감은 언제든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라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테니까요. 극 중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들쑤시고 불편하게 만들었던 제니의 행적은 바로 양심이 우리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방식을 그대로 상징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현실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는 행동은 종종 묵살당하고 심한 경우 이 영화에서보다 훨씬 끔찍하고 참혹한 일을 당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심각한 공감 무능력자나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아닌 이상 자신이 간직한 비밀을 언젠가는 털어 놓게 되어 있고, 진실은 머지 않아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역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현실의 양면 중 어느 쪽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냐는 결국 선택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래 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고 체념하며 자신의 작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며 살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가치는 있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혼자 힘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라는 종에게 어느 쪽이 더 적합한 선택인지는 자명합니다. 이 영화는 그 해답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의사가 되기를 완전히 포기했던 제니의 인턴 줄리앙이 다시 복귀를 결정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제니가 피해자의 언니와 따뜻한 포옹을 나눈 후 다음 환자와 함께 진료실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장면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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