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우먼 Wonder Woma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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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2017. 5. 31. 개봉

큰 기대 속에 개봉했던 <배트맨 대 슈퍼맨>과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DC 확장 유니버스’에 속하는 수퍼히어로 영화들에 대한 기대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앞엣것은 두 영웅이 각자 혼자서 지나치게 심각한 고뇌에 빠지는 바람에 지루할 수밖에 없었고, 뒤엣것은 전반적으로 밋밋하고 볼거리도 부족해서 오직 특출한 여성 캐릭터 할리 퀸을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죠.

그럼에도 이 영화 <원더 우먼>은 어느 정도 기대가 됐던 작품입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후반부를 장식했던, 갤 가돗의 원더우먼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적은 분량이었지만 주연인 배트맨이나 슈퍼맨보다 더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단독 작품에서는 어떤 식으로 보여질지 참 궁금했습니다.

다이애나(갤 가돗)는 숨겨진 섬 데미스키라에 살고 있는 아마존 부족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라납니다. 전사의 후예답게 어려서부터 격투와 전쟁에 큰 관심을 보여 어머니 히폴리테(코니 닐슨) 여왕의 걱정을 사지만, 이모 안티오페(로빈 라이트) 장군에게 특별 교육을 받으며 최고의 전사로 성장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1차 대전 중 독일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영국 스파이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가 데미스키라 근해에 불시착합니다. 다이애나와 아마존 전사들은 그를 쫓아 온 독일군들과 일전을 벌입니다. 바깥 세상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이애나는, 자신의 손으로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스티브와 함께 영국으로 떠납니다.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한 각본이 돋보입니다. 특별히 새로운 플롯이나 반전을 추구하기보다는, 영웅 신화의 기존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쪽을 택했습니다. 약간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큰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됩니다.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와 비교했을 때 악당 캐릭터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원더우먼의 진짜 적수는 자기 자신입니다. 인간에게 평화를 주겠다는 순수한 열정이, 너무 쉽게 악행을 저지르고 타락해 버리는 인간에 대한 애증으로 바뀌려고 하는 가운데, 그녀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가 이 영화의 핵심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무식한 남성 영웅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여성 영웅 원더우먼의 다층적인 면모는 이런 식의 이야기 설계를 흥미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종의 전쟁 마니아인 그녀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쓰러뜨려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적으로 성숙해서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으며, 누구보다도 강력한 능력과 용기로 주위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존재이지요. 이런 내면의 ‘간극’이 지속적으로 관객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주연 배우 갤 가돗의 매력 또한 관객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빼앗아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높입니다. 대사 처리나 감정 표현이 다소 미숙한 부분은 있지만, 모델 출신답게 효과적인 표정 연기와 몸짓으로 매혹적인 순간들을 많이 보여 줍니다. 액션 연기를 빼어나게 잘 소화한 것 역시 특기할 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수퍼히어로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양가 감정을 다루는 것은, ’DC 확장 유니버스’의 제작을 총지휘한 잭 스나이더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 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직접 연출한 <왓치맨>(2009)이나 <맨 오브 스틸>(2013),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다뤄진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이런 주제 의식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잘 풀어내진 못했습니다. 수퍼히어로도 고민이 있다는 정도까지는 알겠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지루한 독백으로 들리곤 했으니까요.

이 영화 <원더 우먼>은 잭 스나이더의 오랜 화두를 드디어 대중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성공한 작품입니다. 수퍼히어로의 내적 딜레마를 대화나 독백 속의 개념으로 전달하지 않고,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직접 등장시켜 플롯에 잘 결합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각본을 맡은 앨런 하인버그의 공이 가장 큽니다. 그는 마블의 인기 코믹스 <영 어벤저스>의 작가로서 DC의 최신 원더우먼 코믹스에도 관여했었고, <그레이 아나토미> 등 여러 유명 미국드라마의 각본을 쓰기도 한 다재다능한 인물입니다.

감독을 맡은 패티 젠킨스 역시 세상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원더우먼이란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등장인물들 간의 미묘한 감정 교환을 효과적으로 그려 내었고, 감정 표현이 완벽하지 못한 갤 가돗의 연기를 잘 살릴 수 있는 디테일을 잘 포착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망이 어두웠던 ‘DC 확장 유니버스’ 세계관의 영화들은 <원더 우먼>으로 일단 그 오명을 털어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 타자는 올해 11월로 개봉이 예정된 <저스티스 리그>입니다.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등을 위시한 DC 코믹스의 대표 캐릭터들이 총출동할 이 영화는, 잭 스나이더가 직접 감독을 맡았으나 얼마 전 딸이 자살하는 불행한 사건을 겪은 후 일단 하차한 상태입니다. 남은 제작 과정은 <어벤저스> 1, 2편를 감독했던 조스 웨던이 지휘할 예정입니다. 그 역시 수퍼히어로의 심리적 갈등을 표현하는 데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갑작스런 감독 교체가 영화의 완성도에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즐길 만한 대중 영화가 다양하게 나오길 바라는 영화 팬의 한 사람으로서, 부디 ‘DC 확장 유니버스’가 성공해서 제대로 자리잡길 바랍니다. 디즈니-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DC 특유의 ‘성찰’이 담긴 수퍼히어로물도 계속 보고 싶으니까요. 올해가 지나면 그 성공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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