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파리 Lost in Pari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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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나래미디어(주)

2017. 5. 18. 개봉

세상에는 자신만의 리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들은 개성이 강해서 좋다고 칭찬을 듣기는 커녕, 쓸데없이 튄다고 핀잔을 듣거나 없는 사람 취급당할 때가 많지요. 사람들은 무엇이든 자기에게 익숙한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면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슷비슷한 대중적인 상업 영화들 사이에서, 남다른 개성을 지닌 영화들은 좀처럼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맛집도 영화도, 무엇이든 고르는 데 실패하고 싶지 않아 검색부터 하는 게 요즘 사회의 분위기이니까요. 큰 기대를 갖고 보지 않아도 기본은 해 주는 무난한 대중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반면, ‘실패’할 위험성이 높은 다양성 영화는 좀처럼 선택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영화 <로스트 인 파리>가 딱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거든요.

캐나다 산골 마을에 사는 피오나(피오나 고든)는 어릴 적 파리로 떠난 이모 마사(엠마누엘 리바)의 편지를 받고 파리로 떠납니다. 이모는 사람들이 자기가 치매라고 병원에 넣으려고 하니 와서 자기를 좀 구해달라고 한 것이죠. 그런데 막상 이모의 주소지에 도착해 보니 이모는 온데간데없고, 피오나도 불의의 사고로 가방과 모든 소지품을 센 강에 빠뜨린 채 파리를 헤매게 됩니다.

그러다 피오나는 독특한 남자 돔(도미니크 아벨)을 우연히 만나 호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자기 옷과 똑같은 걸 입고 있고,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쓰며 기분 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때부터 피오나-돔-마사 사이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봤는데, 영화 초반에 피오나가 등장할 때만 해도 솔직히 적응이 안됐습니다. 동화적 세팅과 웃기려고 하는 의도가 너무 빤한 장면들 때문에 웃어 줄까 말까 망설였지요. 그러나 워낙 시침 뚝 떼고 자기 스타일을 계속 고수하기 때문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열고 특유의 유머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버스터 키튼이나 자크 타티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슬랩스틱 코미디 장면들은, 부부 감독으로서 시나리오를 같이 쓰고 출연까지 한 피오나 고든과 도미니크 아벨의 감각과 내공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정확한 타이밍과 상당한 신체 훈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보여 주기 힘든 장면들을 너무나도 쉽게 연기하거든요. 알고 보니 이들은 오랜 기간 서커스와 무대 공연으로 단련된 능력자들이었습니다. 이미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전작 <룸바>(2008)와 <페어리>(2011)도 비슷한 분위기라니 찾아 봐야 겠다는 생각도 했죠.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얼마 전 타계한 명배우 엠마누엘 리바입니다. 그녀는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2012)로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지만,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으로 데뷔한 이래 꾸준히 쉬지 않고 영화 작업을 계속해 온 배우입니다.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귀여운 사고뭉치 할머니 마사의 장난기 가득한 성격은 그녀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경하던 파리로 건너와 일생을 보낸 마사처럼, 그녀 역시 젊은 시절 연기를 위해 무작정 파리로 상경한 후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 우스꽝스럽지만 훈훈한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간은 다른 이와의 상호 교류를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피오나에게는 캐나다의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겁니다. 약간 외로울 수는 있었겠지만요. 그러나 파리에서 돔을 만나고 잠깐이나마 마사 이모와 함께 시간을 보낸 기억은, 그녀의 삶을 훨씬 더 풍성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돔에게도, 마사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나머지 하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실한 관계 앞에서, 구태의연한 제도나 관습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장례식을 다루는 태도에 이런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유의 불경함으로 장례식의 엄숙주의에 도전하는데, 형식적인 추모보다는 망자가 생전에 누렸던 삶과 다른 이들에게 남긴 추억을 제대로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살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이들과는 달라서 선뜻 다가서기 힘들겠다 싶어 망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눈에 밟히고 생각나는 그런 사람들 말이죠.

<로스트 인 파리>는 사람으로 치면 그런 소중한 인연 같은 영화입니다. 잊고 지나치려 해도 마음 속에서 자꾸만 떠올라 남몰래 웃음 짓게 되니까요. 대단히 잘 만든 영화라고 하기는 힘들고 특별한 주제 의식을 담은 것도 아니지만, 보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영화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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