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파웰-에머릭 프레스버거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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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는 국내 고전 영화팬들에게 <분홍신>(The Red Shoes)(1948)의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안데르센의 동명 동화를 재현한 환상적인 발레 장면들과 예술가의 숙명에 대한 인상적인 언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죠.

이들 콤비는 40년대와 50년대 중반까지 영국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할리우드 고전기의 뮤지컬이나 스크루볼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로맨틱한 정조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이 특징이죠.  대부분의 영화에서 남녀 간의 애정 문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이며, 해학으로 버무려진 대화 씬들이 인상적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유려한 카메라 워킹과 창의적인 앵글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추구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전기 할리우드 못지 않은 세트 디자인과 의상 등의 미술적인 요소, 옵티컬 프린팅 – CG가 사용되기 이전의 기술로, 필름을 이중 인화시켜 특수 효과를 내는 방법 – 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환상적인 효과도 눈에 띄는 요소입니다.

이들은 동시대에 활동한 데이비드 린이나, 다음 세대의 영국 프리 시네마 감독들만큼 비평적 찬사와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대중적인 취향의 정감 있는 영화들로 사랑받았습니다. 영화를 로맨틱한 환상담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들의 작품은 그에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5월 10일부터 21일까지 마이클 파웰 & 에머릭 프레스버거 특별전을 열고 <콘트라밴드>, <침입자들> 같은 두 사람의 협업 초기의 작품들부터 <분홍신> 같은 대표작들까지 총 9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예전에 데이비드 린의 작품들과 함께 특별전으로 소개된 적 있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같은 기획 상영에 한두 번 포함된 적은 있지만 단독 특별전은 처음입니다.

이번 상영작들 중에서 꼭 봐 둘 만한 작품 4편을 골라 간단히 소개해 봅니다.

[하나] <분홍신>(The Red Shoes)(1948)
최고의 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냉혹한 천재 보리스 레몬토프(안톤 월브룩)는 런던 공연에서 새롭게 알게 된 음악가 줄리안 크래스터(마리우스 고링)와 발레리나 빅토리아 페이지(모이라 시어러)의 재능을 알아보고 단원으로 합류시킵니다.

줄리안과 빅토리아는 발레단 생활에 차츰 적응해 간 끝에, 각각 레몬토프가 새로 기획하는 창작 발레 <분홍신>의 음악을 작곡하고 주역을 따내며 영광의 시간을 누립니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지만, 늘 냉철함을 유지하던 레몬토프가 점차 빅토리아에게 매혹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파웰&프레스버거의 작품들 중에서도 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입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발레 영화 중 하나이며, 예술가로서의 성장과 숙명에 관해 많은 영감을 선사하지요. 중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분홍신>의 무대 공연 장면은 이번 특별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비극적인 엔딩은 여성의 자기 실현을 억압하는 남성의 이기심을 우회적으로 고발하기도 하지요.

주연을 맡은 모이라 시어러는 실제로도 뛰어난 발레리나였는데, 이 영화에 주연으로 발탁되어 자신의 재능을 맘껏 뽐냈습니다. 이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출연 제안도 받았지만 거절하고, 발레 무대에 남았다고 합니다. 이후 <피핑 톰> 등 다른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지만, 오래 기억할 만한 배우가 되는 데에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충분했습니다.

[둘] <피핑 톰>(Peeping Tom)(1960)
영화 촬영팀의 조수인 마크 루이스(칼하인츠 뵘)는 괴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여자를 살해하면서,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공포에 떠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죠. 범행 후에도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 나갑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상 심리 살인자를 전면에 내세운 범죄 서스펜스물로서 영국에서 개봉될 당시에도 잔인하고 적나라한 묘사로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수위가 높고 관객을 불쾌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서, 그런 소동이 벌어졌다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마이클 파웰의 단독 연출작으로, 다양한 영화적 표현 방식을 활용하여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또한 영화를 찍고 관람하는 행위가 결국은 관음증적 욕구 충족과 관련돼 있다는 심리학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마크의 이상 성격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어릴 때의 경험, 그리고 강렬한 결말부는 이 주제를 또렷이 잘 보여 줍니다.

[셋] <삶과 죽음의 문제>(A Matter of Life and Death)(1946)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비행기 조종사 피터(데이빗 니븐)는 천사들의 실수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추락 직전에 무전을 교환했던 여군 하사관 준과 사랑에 빠진 상태죠. 이에 천국에서는 피터를 다시 데려가기 위해 전령을 보내고, 급기야 그의 죽음을 놓고 재판까지 열게 됩니다.

로맨스와 판타지의 결합이라는 파웰&프레스버거 영화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종 특수 효과가 많이 사용되었고, 세트의 장쾌한 스케일이 볼 만합니다. 천국을 흑백으로, 현실 세계를 테크니컬러로 표현하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요.

<나바론 요새>, <핑크 팬더> 등으로 잘 알려진 명배우 데이빗 니븐의 연기가 돋보이며, <분홍신>의 마리우스 고링,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의 로저 리브시, <흑수선>에 나온 캐슬린 바이런 등 이번 특별전에 상영되는 다른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넷] <침입자들>(49th Parallel)(1941)
캐나다 해안에 고립된 독일 잠수함 U보트의 승무원들은 폭격으로 잠수함을 잃어 버립니다. 이들이 포로로 붙잡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시 중립국이었던 미국으로 넘어가야만 합니다. 캐나다의 여러 지역을 가로지르며 도주를 감행하는 이들에 대항하는 것은 캐나다의 시민들입니다.

40년대에 유행하던 전쟁 선전물로서, 사람들을 속이고 쉽게 살해하는 나치의 악한 면모와 다양한 계층의 선한 캐나다 시민들 모습이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캐나다 각지의 풍광을 로케이션 촬영으로 담아낸 것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불세출의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슐리 역으로 잘 알려진 레슬리 하워드, <분홍신>-<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에 나온 안톤 월브룩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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