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 Forunshand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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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2017. 5. 11. 개봉

아쉬가르 파르하디는 이란의 이전 세대 감독들과는 결이 다른 감독입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처럼 전통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도 않고, 자파르 파나히처럼 체제 모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 이란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 주면서, 법이나 제도, 또는 사회 통념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도덕적 딜레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의 대표작은 2011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과 남녀 연기상을 휩쓸고, 이듬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까지 받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입니다. 이민 가는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별거를 결정한 중산층 부부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2016년 칸 영화제 각본상과 남자 연기상,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이 영화 <세일즈맨> 역시 흐름은 유사합니다. 라나(타라네흐 알리두스티)와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 부부는 아서 밀러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살고 있던 아파트가 붕괴 위험에 처해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극단 동료의 주선으로 다른 아파트로 이사가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혼자 있던 라나가 끔찍한 공격을 받게 되고, 에마드는 트라우마를 겪는 아내를 보며 범인을 찾고야 말겠다고 다짐합니다.

등장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암시적으로 상황과 인물을 설정하고, 겉으로 오가는 말들 이면에 숨겨진 감정의 격랑을 세련되게 포착해 내는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여전합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공연 장면들은, 주인공들의 일상 생활 및 범인 추적과 관련된 비일상적인 활동 양쪽에 적절한 논평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장면의 의미와 인물의 실제 감정을 좀 더 명확하게 보충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하지요.

주인공 부부 역을 맡은 타라네흐 알리두스티와 샤하브 호세이니는 이전에도 감독과 여러 번 작업했던 배우들입니다. 대사가 많고 연극에 가까운 호흡을 유지하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충분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면의 숨은 의도까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서로 상대방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등의 다채로운 감정을 섬세한 표정 연기에 담아 내지요.

이 영화에서는 목표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범인과 사건의 진상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또 그것이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 돼 주긴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이 던지는 ‘만약 당신이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라나와 에마드가 폭행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은 언뜻 보기에 부적절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도덕적 당위나 원칙을 지키려고 하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다분히 의식한 채 사적인 감정을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학교 교사이기도 한 아메드로서는 평소의 도덕적이고 올바른 사람이라는 평판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주인공들의 모습을 섣불리 비판하거나 정당화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저 등장 인물들이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의 앞뒤 정황을 충분히 보여 줄 뿐입니다. 마치 이것이 바로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의 자연스러운 삶이라는 듯이요.

실제 삷에 대한 경험은 부족하면서도 뭔가 이루어 내고자 하는 의욕이 앞설 때에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옳고 그른 일이 정햬져 있으며, 맞고 틀리는 것에 대한 가치 판단도 분명해야 한다고 믿지요. 그래서 쉽게 열광하고 쉽게 등을 돌려 버립니다.

하지만 세상 일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책이나 이론이 아닌 실제 삶의 영역에서는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판단을 내리기 전에 개별 상황에 대해 이모저모 따져 보아야 하고, 또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세일즈맨>의 미덕은 ‘인생은 답이 없는 여정’이란 명제를 재확인하는 기회를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처럼 깔끔한 해답을 내놓거나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화 속 등장 인물의 선택도 감독이 내놓은 정답이 아니라 여러가지 가능한 선택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늘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과신하여 생기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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