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

©(주)티캐스트

2017. 4. 26. 개봉

홀로코스트는 2차대전 중 나치 독일이 민간인과 전쟁포로 1천만명 이상을 학살한 끔찍한 전쟁 범죄입니다.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비롯하여 슬라브인,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등이 나치의 인종 말살 정책에 희생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종차별주의에 기반한 국가 차원의 범죄였다는 사실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역사학자들의 연구 등을 통해 낱낱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지금껏 제시된 홀로코스트의 증거들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며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고 강변하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국가가 주도한 조직적인 행위는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이런 극단적인 주장은, 사회적으로 불만 있는 사람들에게 화풀이할 대상을 제공하면서 잘못된 사실을 진짜로 믿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둘러싼 세기의 재판을 소재로 합니다. 미국의 유대인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바이스)는 영국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폴)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당합니다. 그녀가 합당한 근거 없이 책을 통해 자신을 비난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영국법으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립스타트는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즉, 어빙이 의도적으로 날조된 주장을 한 것이 사실이며 그것을 지적한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 것이죠. 이에 립스타트는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이혼 소송을 맡았던 유명 변호사 앤서니 줄리어스(앤드류 스캇)의 로펌에 사건을 의뢰하고, 법정에서 직접 변론을 맡을 베테랑 변호사 리처드 램프턴(톰 윌킨슨)을 비롯한 여러 인재들과 함께 소송 준비에 나섭니다.

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은 소송의 승패 여부가 아니라 그 과정입니다. 재판의 쟁점을 정리하고, 대책을 준비하며, 치밀한 변론으로 차근차근 적수를 무너뜨리는 과정 모두가 명쾌한 논리를 바탕으로 펼쳐집니다.

특히 립스타트가 변호인들과 변론 전략을 두고 의견 충돌을 빚는 과정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법정에서 생존자들이 증언하게 하거나, 자신의 연구 성과를 낱낱이 이야기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진실’을 법정에서 확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변호사들은 그런 전략에 반대합니다. 어빙의 진짜 노림수는 재판 과정을 통해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이슈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생존자들을 법정에서 직접 상대하게 하면 그의 의도에 말려 들게 될 뿐이라는 게 이유였죠. 대신, 어빙이 자기 주장을 법정에서 펼치도록 놔둔 후, 그것이 허위임을 논리적으로 밝혀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열정적인 사람일수록, 법적 절차와 논리가 상식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인데 왜 이것을 그냥 받아 주지 않느냐고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요. 립스타트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증언하겠다는 생존자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공개적으로 허위 주장을 하는 어빙에 대한 미움까지 겹쳐서 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소송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과 탄탄한 논리, 그리고 용의주도한 전략 뿐입니다. 순간의 억울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길게 보면서 차근차근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요. 법정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립스타트가 겪는 내적 갈등과 딜레마는, 건조한 논리 싸움이 주가 되는 이 영화에 관객이 정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줍니다.

립스타트의 속내를 절실하게 표현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레이첼 바이스의 연기는 단연 돋보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솔직한 성격의 인물을 섬세한 연기로 재현하지요. 덕분에 관객은 스크린 가득히 번지는 인물의 고뇌와 분노, 걱정 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미스터 터너>로 칸 영화제 남자배우상을 수상한 바 있는 티모시 스폴은, 데이빗 어빙이란 혐오스러운 인물의 실체를 보여 주는 데 주력합니다. 각본의 특성상 관객들이 그를 절대적인 악한으로 여기는 것이 필요한데, 그의 연기는 잠깐만 보고 있어도 곧바로 본능적인 혐오감을 치밀어 오르게 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연기했다고 봐야겠죠.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된 명예훼손 소송입니다. 물론 데이빗 어빙 사건과 직접적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주류 역사학과 다른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는 척하면서 논점을 흐리는 인물에 관한 재판이란 점에서 본질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내용은, 일본 정부에게 계속 불가능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해서 한일 관계를 막다른 곳으로 몰지 말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뿐만 아니라 위안부 동원에 협력한 모든 이들, 또한 그런 제도가 가능하게 만든 성차별적 의식과 사회 구조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는 주장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일종의 말장난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발전적인 한일 관계에 위안부 문제가 걸림돌이 되니,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자는 것이니까요. 매국적인 합의라는 평가를 받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기반하고 있는 논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며칠 전 발표되어 논란이 된, 여성가족부에서 발간한 ‘위안부 합의 보고서’도 마찬가지 논리를 취하고 있지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계속해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일본이 이제까지 한 번도 국가적 차원에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푸는 열쇠는 일본의 사과만을 과격하게 주장하는 한국 시민단체와 생존자들의 태도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인 일본에게 있습니다. 일본만 공식적으로 사과하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를, 피해자의 태도가 문제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사건을 단순 해난 교통사고일 뿐이라며,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나쁜 사람 취급했던 것과 논리상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다중적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틀린 말은 아니지만 큰 의미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위안부라는 제도 자체가 성차별주의에 기반한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자국 군인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어린 여성으로 구성된 위안부를 식민지에서 동원한다는 발상을 성차별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또한 조선인을 포함하여 수많은 민간업자들이 이 제도를 운영하는 데 협력했다고 해서 그들이 국가의 책임을 나눠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홀로코스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이런 부분은 더 확실해집니다.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하면서 인종차별주의를 별도로 거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이미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를 상징하는 악행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양한 형태로 유태인 학살에 협력한 독일 민간인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들의 책임을 별도로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궁극적인 책임이 나치 독일이 만들어 낸 전체주의적 동원 체제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지요.

이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우리 사회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멀쩡한 한국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정적으로 격분했을 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책을 법정으로 끌고 가서 오히려 논란을 키운 것은 정말 부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도 나오듯, 비정통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송사가 오히려 더 큰 기회가 됩니다. 그리고 출판물에 대한 명예훼손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의견을 공표할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는 문제를 촉발하기 때문에, 주장의 사실 왜곡 여부를 가리는 것보다 표현의 자유 문제가 더 부각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차라리 이 영화의 소송 변호사 로버트가 재판하는 동안 어빙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것처럼, 애초부터 철저한 무시 전략을 쓰는 게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소송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발언을 부각시키고, 직접 증언대에 서게 만든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은 진실을 담고 있지만, 법정에서 요구하는 논리를 갖춘 진술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기억과 체험담은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고,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지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약점도 있지요.

실제로 박유하와 그 지지자들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법정 안팎에서 다분히 감정적 대응을 한 것을 꼬투리잡아 발언의 신뢰성을 흔들고 있으며, 한국이 얼마나 민족 감정에 휘둘리는 나라인지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역사 왜곡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 학문적 자유가 침해받는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짜서 논의의 본질을 흐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는 박유하의 책에 나온 내용들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일반 대중들에게 환기시키는 적극적인 ‘팩트 체크’가 중요합니다. 민-형사 재판 과정에서 어떤 부분들이 사실 왜곡이고 잘못된 의견으로 밝혀졌는지 낱낱이 알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는 역사학계의 연구를 통해 확고하게 입증된 전쟁 범죄’라는 객관적 연구 성과를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다분히 감성적인 접근을 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민족 감정을 자극하여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지만, 정작 일본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및 위안부 관련 사항이 왜곡 기재되는 것을 손놓고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또한 객관적으로 증명된 역사적 사실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심지어 역사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했지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얘기 아니냐, 뭐하려고 아픈 역사를 들추려 하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계속 태어나고 있고, 역사적 아픔과 교훈을 공유하지 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 법입니다.

전후 70년이 넘게 지났지만 홀로코스트 문제가 여전히 계속 이슈가 되는 이유도, 사명감을 갖고 연구하고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포함하여 일본의 전쟁 책임을 정당하게 추궁하는 우리의 노력 역시 같은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부정한다>는 그 여정에 훌륭한 길잡이이자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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