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우 씨>,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햇살과 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17. 3. 15.)
영국의 작가 로알드 달은 촌철살인의 기지가 돋보이는 단편 소설과,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특히, 그의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기존의 상식을 간단히 뒤엎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어른들이나 세상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통쾌하게 날려 버리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죠.
이 책 <멋진 여우 씨>는 로알드 달의 중편 동화입니다. 골짜기 아래에서 각자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욕심쟁이 농부 세 명에겐 골칫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언덕 위에 사는 여우 씨지요. 그는 여우 굴을 파고 아내와 함께 새끼 여우들을 기르며 살고 있는데, 늘 농장의 닭과 오리들을 몰래 훔쳐 먹곤 했습니다.
매번 여우 씨를 잡으려다 실패했던 농부들은, 셋이 힘을 합쳐 여우를 잡기로 하고 여우 굴 앞에서 총을 들고 기다립니다. 여우 씨는 그것도 모르고 굴을 나서려다 총격을 당합니다. 꼬리만 잘리고 겨우 목숨을 부지한 여우 씨는 곧장 여우굴로 들어가 버리고, 세 명의 농부는 그를 붙잡기 위해 여우 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농부들과 여우 가족들 간에 사활을 건 굴파기 대결이 펼쳐지지요.
일반적인 동화 속의 여우는 교활하고 나쁜 짓을 하기 때문에 벌을 받는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릅니다. 영리하고 속임수에 능하며 남의 것을 잘 훔치는 고유의 특성은 그대로지만, 자기보다 더 고약한 심보의 농부들을 보기 좋게 골탕먹이는 멋진 주인공입니다.
이런 여우 씨의 모습은 많은 어린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자기 힘만 믿고 뻐기는 농부들을 꼼짝없이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고, ’남의 것을 훔치는 건 무조건 나쁜 짓’이라고 얘기하는 어른들의 경직된 사고 방식마저도 가볍게 뛰어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로알드 달의 동화들은 재미있지만, 장편의 경우에는 분량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라면 글자 읽는 것이 서툴거나, 아직 책읽기에 재미를 못 붙인 어린이들이라도 버겁게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로알드 달 동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퀸틴 블레이크의 삽화가 들어 있는, 큼지막한 글자로 찍힌 120쪽 분량의 짧은 이야기니까요.
이 책의 번역은 어린이 책을 전문으로 기획하고 번역해 온 햇살과 나무꾼 팀이 맡았습니다. 2007년에 펴낸 초판은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에서 2008년 ‘어너리스트’ 번역 부문에 선정된 바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개정판을 내면서 문장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고 낡은 표현을 손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독서를 공부와 연관시키는 안 좋은 풍조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이유가 고작 학교에서 성적 잘 받아오게 만들기 위해서인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히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사춘기 전후가 되면 장르 소설에 빠지지 않게 잘 감시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아이들에게 책읽기는 점점 지겨운 ‘공부’이자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책은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읽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재미’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주는 쾌감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깨달아 알게 됐다는 데서 얻는 기쁨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타인의 생각과 삶을 접하며 느끼는 감동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책이 선사하는 다양한 종류의 재미에 눈을 뜨게 되면, 누구라도 평생 동안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멋진 여우 씨>는 어린이들에게 그런 책읽기의 재미를 듬뿍 느끼게 해 줄 만한 책입니다. 또한 로알드 달의 작품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줄 수도 있겠죠. 더 읽어 볼 만한 로알드 달의 장편 동화로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마틸다>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을 각색해서 만든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Mr. 폭스>(2009)를 아이와 함께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은 독후 활동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