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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20. 개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맥도날드는 세계 1위의 패스트푸드 체인입니다. ’정크 푸드’의 대명사이자, 미국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여겨져 온 이 브랜드는 60여년 젼 첫 프랜차이즈 식당을 연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최근 들어 웰빙 열풍과 함께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애플, 구글 등 IT업계의 강자들과 함께 세계 10대 브랜드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 왔습니다.

<파운더>는 맥도날드의 설립자 레이 크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그는 원래 밀크쉐이크 5개를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멀티 믹서기를 파는 영업사원이었습니다.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여러 식당에 이 기계를 팔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죠. 하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멀티 믹서기 구매 의사를 밝힌 캘리포니아의 한 식당을 방문하게 됩니다. 상호가 ‘맥도날드’인 이 식당은 특이했습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휴게소 식당들과는 달리, 주문 후 종업원이 음식을 식판에 담아 갖다 줄 때까지 차에서 한참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죠. 이곳에선 사람들이 음식을 사기 위해 직접 줄을 서고, 주문한 메뉴를 몇십 초만에 받으며, 간편하게 포장지만 열어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식당의 주인인 맥도날드 형제는 메뉴의 개수를 줄이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단순화한 끝에 주문 후 30초만에 음식을 받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창안한 것이었습니다. 전국의 식당을 다녀 본 경험이 있는 크록은 이 방식의 성공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 보고 주인 형제를 설득해 프랜차이즈 사업에 나섭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성공담의 궤적을 따르고 있습니다. 원대한 꿈을 가진 주인공이 특별한 기회를 잡게 되고, 몇 가지 장애물을 극복한 끝에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식의 구성이지요.

중반부까지는 주인공의 성공을 향한 내적 열망과 프랜차이즈 사업을 점차 확장해 가는 외적 상황이 잘 맞물려 돌아갑니다. 실패한 50대 세일즈맨이 맨손으로 대기업을 일으키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강한 호소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반 이후 결말까지 이르는 전개가 다소 심심한 편입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갈등을 만들어 내는 반대 세력이 갑작스럽게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레이 크록이 싸워야 했던 상대는 식당 영업에 관한 기존의 상식, 기득권을 가진 가진 사람들의 안이한 태도, 실물 담보 없이는 돈을 대출해 주지 않는 은행 등 언뜻 생각해 봐도 쉬운 싸움이 아니겠다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그가 대립하게 되는 사람은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음식 만드는 원칙을 지키고 싶어하는 동업자 형제,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사업적 마인드가 부족해서 대화가 없어진 아내일 뿐입니다. 딱히 주인공의 입장을 지지하고 싶지 않은 대립 구도인데다, 승부의 결과도 뻔하게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고양되어야 할 절정 부분의 효과가 반감되고 맙니다.

거의 혼자서 극을 이끌어 가는 마이클 키튼의 연기는 좋은 편입니다. 별 볼일 없는 외판원의 낙담한 모습부터 성공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수완 좋은 사업가의 면모까지 솜씨 좋게 잘 표현합니다. 그러나 키튼 같이 관록 있는 배우에게 이런 정도의 연기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퍼펙트 월드>(1993)-<미드나잇 가든>(1997) 같은 영화의 각본가이기도 한, 감독 존 리 행콕은 이미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블라인드 사이드>(2009)-<세이빙 미스터 뱅크스>(2013) 등에서 무난한 연출력을 선보였습니다. 배우의 연기와 각본 자체의 흐름을 살리는 무색무취한 연출은 이번 영화에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레이 크록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먼저, 사업 초기에는 가맹점 업주들로 하여금 맥도날드 형제들의 방식을 그대로 준수하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투자 여력이 있는 재력가들은 새로운 규칙을 따르는 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크록은 돈 벌 기회를 찾고 있는 성실하고 근면한 젊은 부부들을 공략했지요. 이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복잡한 규칙을 지키는 데 앞장섰고, 그 결과 맥도날드의 새로운 방식이 단단히 뿌리내리게 된 것이죠. 개인의 이윤 추구 행위가 생산 활동의 개선과 발전을 이끌어 내는, 자본주의의 교과서적인 순기능을 보여 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업이 확장 일로에 있을 때 프랜차이즈 계약 조건 등의 문제로 자금난을 겪게 된 크록은 대출이 막히자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됩니다. 맥도날드 체인점이 들어설 부지를 직접 소유하고 가맹점 업주에게 세를 받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죠. 그리하여 이 부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금을 융통하거나, 다른 부지를 더 구입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일종의 레버리지 투자를 한 것인데, 1950년대에는 부동산 가격이 쌌고 맥도날드가 들어선 이후 주변 지역의 땅값이 점차 올랐기 때문에 이 결정은 탁월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최근의 수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맥도날드가 현재까지 기업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양의 회사 소유 부동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마지막으로 다뤄지는 쟁점은 경제적 효율성입니다. 밀크쉐이크를 만들 때 진짜 아이스크림을 사용하지 않고 인스턴트 가루를 사용하면 보관 및 물류 비용을 아낄 수 있는데, 맥도날드 형제는 음식의 질 문제를 들어 끝까지 반대합니다. 결국 레이 크록은 그들에게 270만불을 주고 계약 관계를 끝내게 되지요.

이런 면에서 <파운더>는 이야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극영화라기보다는, 경영학 수업이나 재테크 강좌의 사례 연구용 시청각 자료에 더 가까운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계속해서 되풀이 하는, 일종의 자기계발서 같은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런 류의 책이나 영화가 으레 그렇듯 성공한 사람의 방식이 어땠는지 보여 주는 데 관심이 있다 보니, 그 방식이 지닌 모순을 짚어 주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한 편입니다. 외식 업체가 더 좋은 음식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기보다는 목 좋은 땅을 선점하는 데 더 신경 쓰는 것, 효율성이라는 구실로 다른 가치를 서슴지 않고 희생시키는 모습 같은 것들을 좋게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헌신한 도전적인 기업가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