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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옆의자

<마지막 제국>, 브랜던 샌더슨 지음, 송경아 옮김, 나무옆의자 펴냄 (2017. 3. 6.)

판타지의 하위 장르에는 하이 판타지(High Fantasy) – 혹은 에픽 판타지(Epic Fantasy) – 라는 것이 있습니다. 치밀하게 설계된 가상의 대체 세계를 설정하고, 주인공이 그 세계 전체의 운명을 놓고 벌이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그린 작품들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 같은 경우가 여기에 속하죠.

이 책 <마지막 제국> 역시 하이 판타지입니다. ‘미스트본’ 3부작의 첫 번째 권으로서, 미국에서는 2006년에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략적인 세계관 설정과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로드 룰러’ 라는 강력한 지배자의 손아귀에 있는 ‘제국’은, 서양 중세의 봉건 제도와 유사한 사회 구조를 가진 곳입니다. 로드 룰러는 제국의 공적 사무를 관장하는 ‘오블리게이터’와, 사법적 처벌을 담당하는 ‘강철 심문관’들을 부리며 제국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의 밑에는 여러 귀족 가문들이 자신의 성과 영지를 가지고 ‘스카’라고 불리는 하층민들을 생산 활동에 투입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세계에는 특정 금속 원소를 몸 속에서 태워 초능력을 발휘하는, ‘알로맨시’라고 하는 마법이 존재합니다. 어떤 금속을 태우느냐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초능력이 다른데, 알려져 있는 모든 알로맨시 기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미스트본’이라고 부릅니다.

도둑 패거리의 일원인 주인공 소녀 ‘빈’은 부지불식 간에 약한 알로맨시 마법을 사용하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스카 계급의 구원자로 널리 칭송받는 미스트본 ‘켈시어’를 만나게 된 그녀는, 자신 역시 미스트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켈시어와 그의 동지들은 로드 룰러의 철권 통치를 뒤엎을 거사를 계획 중인데, 빈은 여기서 귀족 여성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또한 미스트본 능력을 차근차근 키워 나가 뛰어난 전사로 성장하지요.

이 책의 작가 브랜던 샌더슨은 2000년대 이후 데뷔한 영미권 판타지 작가들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데뷔 후 10여년간 장편 소설만 20권을 쓰는 등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고, 2013년에는 중편 <황제의 영혼>(2016년 국내 출간)으로 휴고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트본’ 시리즈는 이 책을 포함한 3부작이 호평 받았고, 그 이후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또 다른 4부작이 출간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가는 향후 앞선 시리즈보다 문명이 더욱 발전된 후대를 배경으로 한  3부작 시리즈 두 개를 더 내놓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알로맨시’라는 마법 체계 때문입니다. 특정 금속과 그 합금이 짝을 이뤄 다양한 초능력의 에너지원 역할을 한다는 설정은 무척 참신하면서도 논리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철-강철, 주석-백랍, 아연-황동, 구리-청동으로 구성된 기본 8개 원소들과 연관된 능력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알로맨서’들과 ‘미스트본’의 활약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인공의 성장과 성숙을 다룬 전통적인 영웅 서사를 뼈대 삼아 다양한 쟁점을 녹여낸 것 역시 특기할 만한 점입니다. 사회 구조와 계급의 문제를 논하고, 역사와 종교의 본질을 숙고하며, 이 세계관을 지탱하는 마법 체계의 비밀을 탐구하는 과정은 상당한 지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또한 서브 플롯에 다채로운 장르 서사를 채용하여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치열한 혁명의 서사,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적 암투, 호쾌한 액션 등이 쉴 새 없이 들고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850 페이지나 되는 장대한 분량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미스트본’ 시리즈는 앞으로 2권 <승천의 우물>, 3부 <영원의 영웅>이 계속 번역되어 나올 예정입니다. 계획대로 무사히 출간되어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너무 궁금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