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즌 (2017)

resize_prison_P
©(주)쇼박스

2017. 3. 23. 개봉

한국 상업영화는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무랄 데 없는 관객 동원력도 그렇고, 액션이나 CG 등의 영화적 표현 기술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시나리오에 있어서는 여전히 나아진 점을 찾기가 힘듭니다.

사실, 좋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재미있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쓰는 일만큼 어렵습니다. 두 시간 내외의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제 하에, 행동과 대사만으로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와 사건 전개를 지루하지 않게 펼쳐 보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영화화된 각본들은 그래도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검증된 수준을 지닌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동시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한다면,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제작비의 규모가 훨씬 큰 할리우드와 견주어 보는 것이 무리라면, 지금보다 제작 편수도 적고 여러모로 환경이 열악했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한국 영화들과의 비교는 어떨까요? <넘버3>, <초록물고기>, <여고괴담>, <공동경비구역JSA> 같은 당시의 화제작들에 비하면 오늘날 한국 영화의 시나리오들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10여년째 묶여 있는 각본료가 보여 주듯 TV나 웹툰 등 다른 매체에 비해 매우 열악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처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시나리오에만 전념해서 먹고 살 수 없는 구조는 재능 있는 작가를 자꾸만 다른 매체로 내몰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템을 가진 제작사보다 돈줄을 쥔 투자사 중심으로 제작 시스템이 재편되면서, 이야기의 개성보다는 상업적으로 검증된 장르와 플롯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큰 이유입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에 따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기보다는,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이 영화 <프리즌>은 한국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일해 온 나현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그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화려한 휴가> 같은 흥행작을 집필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작품에 각색으로 참여한 바 있지요.

교도소에 신참으로 들어온 전직 경찰 유건(김래원)은 원래 검거율 100%를 자랑하는 능력 있는 형사였습니다. 자신의 타고난 성깔과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하는 그의 불같은 성격은, 교도소 전체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재소자들의 왕 익호(한석규)의 시선을 끌게 됩니다. 익호는 유건을 자신의 범죄 세계에 끌어 들이고, 이 과정에서 유건의 진짜 의도가 점차 드러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주연을 맡은 한석규와 김래원의 연기입니다. 모든 감독들이 한번쯤 작업해 보길 원하는 배우 중 하나인 한석규는 철저하게 악에 물든 익호라는 인물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자신이 가진 발성과 말투, 몸가짐의 방식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꾸어 예측을 불허하는 악당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부드러운 로맨스나 진지한 드라마의 주인공에서부터, 거친 매력의 터프가이 역할까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김래원은 자신의 그런 강점을 최대한 활용합니다. 늘 개싸움을 벌이고 건들거리지만, 진지한 속내를 품고 있는 유건이라는 인물을  분열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매끄럽게 잘 형상화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각본은 여전히 아쉬움을 남깁니다. 설정 자체는 신선한 편입니다. 국가 기관인 교도소를 일개 재소자가 쥐락펴락하며, 다른 재소자들을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 각종 범죄에 관여하게 한다는 것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색다른 세계관임에 분명합니다. 비현실적이긴 해도 앞뒤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이야기 세계 내에서는 충분히 용인 가능한 수준입니다.

문제는 유건의 진짜 의도가 감춰진 채 벌어지는 초중반의 전개입니다. 일어나는 사건들의 인과 관계도 명확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이뤄지지만, 이상하게 흥미진진하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됐나 보네’ 하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영화 속 상황을 바라보게 될 뿐, 긴장감을 갖고 다음 상황을 궁금해 하며 보게 되지는 않는 것이죠.

이것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실제로 유건의 진짜 목표가 조금씩 드러나는 중반 이후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비밀을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확실히 좀 더 긴장감이 생깁니다. 이 때부터 점차 고조되는 서스펜스는 후반부의 전개를 그나마 끝까지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됩니다. (반면,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는 이른바 ‘쎈’ 장면들은 오히려 관람에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영화나 소설이 재미있으려면 끊임없이 다음에 올 장면들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주인공의 과거나 숨겨진 의도가 궁금해서 지나간 장면들을 되짚어 보게 만들면, 누구나 재미없다고 느끼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곡성>의 시나리오는 최근 나온 영화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잘 씌어진 각본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제기한 미스터리에 대해 명확하게 해결짓지 않는 것은 문제이지만, 끝까지 다음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여 관객을 영화 속 세계로 빨아들이는 데는 성공했으니까요.

이 영화 <프리즌>은 결국 <화이트 히트>(1949)나 <도니 브래스코>(1997), <무간도>(2002), <신세계>(2012) 같은 영화로 이어지는, ‘신분을 속이고 범죄 집단에 잠입한 경찰의 이야기’라는 오랜 전통을 잇는 작품입니다.

이미 숱하게 반복돼 왔던 설정이기 때문에 좀 다르게 가고 싶었던 걸까요?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것이 ‘스포일러’라며 함구했을 정도로 유건의 진짜 의도를 숨기고 싶어했습니다. 일부러 무언가를 숨기는 것은 일종의 반전 효과를 노리기 위함인데, 여기서는 새로 밝혀진 사실이 매우 전형적인 설정이기 때문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교도소 배경이라는 색다른 설정이 있으니, 비슷한 장르의 다른 영화들처럼 유건의 진짜 계획을 관객에게 정확하게 짚어 주고 시작했어도 좋았을 것입니다. 위험천만한 유건의 계획이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 영화가 교도소 내부의 리얼리티를 묘사하는 데 참조했을 법한 <예언자>(2009)나 <스타드 업>(2013) 같은 전개를 취했다면 어땠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이 영화들은 성장 플롯을 채용하여 주인공이 진정한 범죄자로 성장하는 모습이나 완벽하게 실패하는 처참한 결말을 보여 주면서,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작품들입니다.

만약 그런 길을 갔다면 이 영화 <프리즌>은 확실히 색다른 한국 영화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60억원 가량의 순제작비를 사용하는 풍족한 환경은 불가능했겠지만요.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