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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미래

<12명의 하루>, 스기타 히로미 지음, 김난주 옮김, 밝은미래 펴냄 (2017. 1. 9.)

어릴 때의 눈높이로 보는 세상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가족과 친척, 친한 친구들, 자주 보는 어른들과 마주치는 정도가 다지요. 자기가 지금 당장 관심 있는 일에만 집중할 뿐, 다른 사람들이 뭘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느라 바쁜 요즘의 어른들 역시 행동 범위와 시야가 좁습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고, 다들 자기 생업에만 매몰돼 있지요.

이 책 <12명의 하루>는 한 동네 주민인 열 두 명의 캐릭터들이 보낸 24시간을 한꺼번에 보여 주는 그림책입니다. 갓난 아기부터 할머니까지, 또한 택배 아르바이트생부터 정규직 간호사까지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남녀노소가 보낸 특별한 하루가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그 중에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동네 출신 유명 음악가의 동상과 동물원의 사자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걸 어떻게 다 한 책에 넣었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한 명도 아니라 열 두 명이라니 복잡할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 인물별로 네모칸 12개를 배치하고, 아침 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인물들의 시간대별 상황을 보여 주거든요.

각자의 네모칸만 집중해서 보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알 수 있고, 다른 칸으로 시야를 넓히면 해당 시간대에 다른 인물들은 뭘 하고 있을지 둘러볼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만나기도 하는데, 네모칸이 가로나 세로로 크게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 밑에는 그 시간대의 동네 풍경을 그려 넣어 자연스럽게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돋웁니다. 또 맨 마지막 장에는 동네 전체의 지도가 실려 있어 앞서 나왔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디서 일어났을 지 되짚어 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없고 오직 그림으로만 돼 있기 때문에, 독자 스스로 인과 관계를 유추해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게 짜인 것이 특징입니다. 단순하고 예쁜 그림체와 여백을 잘 활용한 지면 구성 덕분에, 글자를 못 읽는 취학 전 어린이들도 집중해서 볼 수 있습니다.

제20회 일본 그림책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아기자기하고 치밀하게 계획한 작가의 용의주도함이 읽으면 읽을수록 빛납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반복해서 볼 때마다 발견하는 새로운 사실에 흥분하고, 캐릭터들의 일상이 연결될 때마다 신기하다고 손뼉치며 즐거워했습니다.

인물들 사이에 연관 관계를 찾을 만큼 찾았다 싶으면,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각 인물들의 동선은 전체 동네 지도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생인 저희 아이들은 딱히 큰 흥미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크면 찾아 보게 되려나요?

아이들 그림책은 몇 번 보고 나면 금세 다 아는 내용이라며 손도 안 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도서관을 이용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책이라면 오래 두고 보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12명의 하루>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책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직업을 가지고 있고, 서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하루하루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요. 아이와 함께 읽고 동네 한 바퀴 산책 나가 소소한 얘기를 나눠 보는 시간을 가지거나, 동네 지도를 함께 그려 보는 것도 독후 활동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