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3. 8. 개봉
킹콩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괴수 영화 캐릭터입니다. 다른 괴수들과 격투를 벌이고, 인간 여성과 교감을 나누며, 인간 세상까지 끌려 나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존재는 창작자들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1933년의 원작을 1976년, 2005년에 리메이크 한 것 외에도 다양한 속편과 아류작들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이 영화 <콩: 스컬 아일랜드>는 그 킹콩을 다시 한 번 스크린으로 불러 들인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리메이크는 킹콩과 그가 살고 있는 해골섬의 환경을 보여 주는 데 좀 더 집중합니다.
괴생물체를 연구하는 조직 모나크의 일원인 랜다(존 굿맨)는 베트남전 종전 선언이 이뤄진 직후, 상원의원을 설득하여 미지의 섬을 탐험할 예산과 인력을 배정받는 데 성공합니다. 전직 영국 특수요원 콘래드(톰 히들스턴), 베트남전을 마치고 투입된 헬기 부대를 이끄는 패커드(사무엘 L. 잭슨), 사진 기자 위버(브리 라슨) 등이 그와 함께하게 됩니다.
일행은 패카드의 헬기 부대로 섬을 둘러 싸고 있는 폭풍우를 뚫고 들어가 해골섬에 도착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렇지만 랜다의 진짜 목적이 애초에 구실로 삼았던 지질 연구가 아니라, 이 섬에 사는 거대 고릴라 ‘콩’과 다른 거대 생명체들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모두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제작진의 기획 의도대로 콩의 본거지인 해골섬의 자연 환경과 원주민, 다양한 거대 생물들은 괜찮은 볼거리를 선사합니다. 들소, 메뚜기, 거미, 문어 등의 거대 버전 동물들과, 해골섬의 악마적 존재이자 콩의 상대역인 스컬 크롤러 같은 괴생물체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히 역대 킹콩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콩의 캐릭터 설정 및 디자인, 박진감 넘치는 괴수들 간의 격투 씬은 이 영화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크한 성격과 태도, 그리고 부모를 잃은 과거사는 이 잘생긴 고릴라에게 좀 더 인간적인 개성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가 다른 괴생물체들과 벌이는 사투에 짧은 순간이나마 감정 이입하게 될 때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콩을 보여 주기 위해 등장하는 인간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편입니다. 극의 진행을 위해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한 기능적인 캐릭터들로 가득 차 있지요. 일행을 해골섬으로 끌고 오게 되는 랜다와, 전쟁을 즐기는 성향 때문에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 넣는다는 설정의 패커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진 기자 위버도 ‘킹콩과 교감을 나누는 인간 여성’이라는 전작들의 전통을 재현하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도입부에 잠깐 소개되었다가 극 중반에 깜짝 등장하는 말로우(존 C. 라일리) 는 꽤 흥미로운 캐릭터였습니다. 2차대전의 군인인 그가 베트남전의 군인들을 만난다는 설정, 자연스럽게 녹아 든 존 C. 라일리 특유의 코미디, 일본도를 활용한 액션 장면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크 나이트 3부작’과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으로 알려진 레전더리 픽처스와 워너가 만든 이 영화는, 일본 제작사 도호에서 나왔던 고지라 시리즈를 리메이크하는 ‘몬스터버스’(몬스터+유니버스) 세계관에 속한 작품입니다. 2014년작 <고질라>의 흥행 성공이 이 기획을 가능하게 만들었지요.
이 세계관에 기초한 차기작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9년에는 고질라가 킹기도라, 모스라 같은 일본 고지라 영화에 나왔던 괴수들과 대결을 펼치는 <고질라: 몬스터의 왕>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이어, 2020년에는 고질라와 킹콩이 맞대결하는 영화가 나온다고 합니다.
‘몬스터버스’ 시리즈는 예전 일본 괴수물 시리즈에 대한 향수가 있거나, 괴생명체들의 격투 자체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리즈의 성패 여부는 언제나 그렇 듯 얼마나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내느냐에 있습니다. DC 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을 대거 등장시킨, ‘DC 확장 유니버스’의 <배트맨 대 슈퍼맨>과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