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Loga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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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2017. 3. 1. 개봉

엑스맨 시리즈의 특징은 주요 캐릭터들이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로서 사람들의 몰이해와 선입견 때문에 잘못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시리즈 내의 모든 갈등이 여기서 출발하지요. 차별적 대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잘 조절해서 인류를 위해 사용하자는 입장의 ‘엑스맨’들은, 차별에 맞서 자신들의 위대함을 보여 주자는 매그니토 같은 다른 돌연변이들이나, 돌연변이를 없애거나 통제하고 싶어하는 정상인들을 적으로 맞이하여 끊임없는 싸움을 해 왔습니다.

이 영화 <로건>은 특유의 치유 능력인 ‘힐링 팩터’ 때문에 ‘남들과 다른 삶’을 어떤 돌연변이보다도 오래 살아가야 했던, 엑스맨의 대표 캐릭터 울버린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로건(휴 잭맨)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출장 리무진 기사로 일하며 몹시 늙어버린 프로페서 X(패트릭 스튜어트)를 비밀리에 돌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울버린임을 알아 보고 접근하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어린 소녀 로라(다프네 킨)를 지정된 좌표의 지역으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며 돈을 건네고, 마침 돈이 필요했던 로건은 내키지 않지만 그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로라를 쫓고 있는 의문의 기계팔 사나이 도널드 피어스(보이드 홀브룩)와 그가 이끄는 조직의 습격을 받게 되고, 그들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로라 역시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정조는 서글픔입니다. 캐릭터 설정부터 그렇지요. 거친 마초 캐릭터였던 로건은 황량한 멕시코 국경에 숨어 프로페서 X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과거 놀라운 정신 능력을 지녔던 프로페서 X는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늙은이에 불과한 것처럼 보입니다. 로라 역시 천부적인 살상 능력을 지녔지만 그토록 어린 나이에 피 튀기는 싸움에 내몰리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로드 무비 같은 중반부나 결말부의 대결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사 가족 관계인 프로페서 X-로건-로라의 여정은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그 과정에서 치르게 될 참혹한 대가에 대한 어두운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미 쇠락한 육체적 능력을 억지로 끌어 올려 마지막 싸움에 나서는 로건의 모습은, 여태껏 사랑하는 이들을 잃기만 했던 그의 과거와 맞물려 일종의 숭고함을 느끼게 하지요.

이 영화의 폭력 묘사는 수위가 다소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킥 애스> 시리즈처럼 깜찍한 소녀 전사의 매력을 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킹스맨>에서와 같이 시각 디자인적 요소를 첨가하여 오락적인 볼거리로 만들거나, <존 윅> 시리즈처럼 사실적인 액션과 고난도 스턴트를 통해 쾌감을 주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신 여과 없이 등장하는 가차 없는 폭력과 죽음의 이미지들은 로건이 헤쳐 온 처절했던 과거의 삶, 그의 일행이 맞닥뜨린 섬뜩한 현실적 위협, 그리고 로라를 비롯한 차세대 돌연변이들이 맞이하게 될 미래의 숙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그 때문에 관객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한층 더 커집니다.

감독 제임스 맨골드가 직접 쓴 각본은 ‘울버린의 최후’라는 중심 소재에 맞게 모든 것이 잘 조직돼 있습니다. 감독이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듯, <셰인> 등 기존의 다른 영화들로부터 극적 아이디어나 정서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특별히 새롭다고 할 만한 지점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등장 인물을 선택하고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것은 물론, 세심하게 복선을 설정하고 작품 안의 상황을 빠짐없이 설명할 수 있도록 디테일을 잘 채워 넣었다는 점에서 성실하게 잘 쓴 시나리오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허트 로커>, <월드 워 Z>, <설국열차> 등에 참여했던 영화 음악가 마르코 벨트라미의 음악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합니다. 캐릭터에게 느끼는 처연함과 그들이 처한 비정한 현실이 이질감 없이 잘 맞물릴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의 공입니다. 특유의 타악기 리듬을 활용한 액션 장면들과 흐르는 선율로 감싸 안은 황량한 풍경들은 기묘한 서글픔을 자아냅니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게 되면 세상의 불의와 고통에 예전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즉각적인 격한 반응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서 봤자 바뀌는 건 하나도 없더라’, ‘어차피 힘 있는 사람들 마음대로 돌아가게 돼 있다’는 체념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의 씁쓸한 경험과 현실에서 느끼는 막막함은 그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개를 들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라 봐야 합니다.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이 고난과 아픔이 나중에는 더 심화된 형태로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말 테니까요. 우리에겐 다음 세대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되지도 않는 조언으로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작게나마 실천함으로써 현실의 모순과 어려움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이 영화 속에서 로건이 애쓴 것도 자신이 겪은 죽음과 폭력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도 처음부터 알았을 겁니다. 어린 친구들이 국경을 넘는다고 해서 돌연변이들을 악용하고 말살하려는 시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거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그가 죽음을 앞두고 이뤄 낸 ‘작은 성공’은 로라를 비롯한 다음 세대의 돌연변이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지난 몇 달 간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국가 조직을 동원해 사익을 추구하여 나라의 부를 털어먹은 이명박 일가와 그 주변 사람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일족 같은 사람들로 인해 고생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촛불의 힘이 대통령 탄핵을 넘어 실질적인 국가 개혁으로 향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늘의 이 기억이 자라나는 세대들에 희망의 씨앗으로 남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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