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소 고지 Hacksaw Ridg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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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네마(주)

2017. 2. 22. 개봉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합니다. 의무 복무제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들에게 군대에 들어가지 않고 민간 봉사 활동을 통해 병역 의무를 대신하게 하는 대체 복무를 허용하고 있지요.

하지만 유난히 군대 안 가는 것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는, 대체 복무 제도를 통해 병역 의무를 건너 뛰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6년에 도입이 발표되었던 대체 복무제가 정권이 바뀌면서 취소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군 형무소에 투옥되어 병역 의무 기간 동안 수감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영화 <핵소 고지>는 2차 대전 중에 있었던 어느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기적 같은 실화를 다룬 작품입니다. 독실한 안식교회 신자인 데스먼드 도스(앤드류 가필드)는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톰(휴고 위빙)을 보면서, 자신은 절대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왔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병역 의무를 지는 대신 군수품 공장에서 대체 복무를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의무병으로 입대하여 다른 이들을 돕고 싶어 합니다.

군사 훈련을 받되 집총 훈련은 한사코 거부하기로 원칙을 정한 도스는, 그럴 거면 다 관두고 대체 복무를 하라는 지휘관들의 지속적인 압박을 받고,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대원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을 꿋꿋이 견디고 우여곡절 끝에 군사 훈련을 마친 그는 의무병으로서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됩니다. 그의 중대에 부여된 첫 임무는 바로 ’핵소 고지’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모든 고난을 감수하고, 비무장 상태로 전투에 투입되어 부상으로 쓰러진 동료들을 구하려 애쓰는 데스먼드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가 해낸 일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보면서 연신 ‘이게 정말 실화라니’ 하는 경탄을 내뱉게 만듭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공격을 극적으로 해소하는 방식입니다. 주인공이 집요하게 신념을 포기할 것을 강요 받는 과정을 보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탄압하는 일반적인 논리가 다양하게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 다같이 하는 전투인데 너만 그래서 되겠느냐, 네가 비폭력을 주장한다 해서 적군이 봐 주지 않을 것이다, 왜 혼자 착한 척해서 다른 사람들을 악마로 만드느냐 등등.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전투 장면에서 도스가 보여준 모습으로 모두 반박됩니다. 도스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헌신적인 태도로 의무병의 임무를 다하고, 모두가 퇴각한 고지에 남아 끝까지 ‘한 명만 더’를 외치며 전장에 쓰러진 동료들을 구하려 노력하니까요. 이 부분이 꽤 감동적입니다. 심지어 그가 만들어 낸 기적은 결국 고지를 점령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앤드류 가필드의 연기는 좋은 편입니다. 버지니아 출신인 실제 인물을 모사하기 위해 구사하는 촌스런 남부 억양은, 순수한 열정과 신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그의 모습과 잘 어울립니다. 편견의 희생양이 된다는 점에서 영화 데뷔작이었던 <보이A>(2007)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도스의 여자친구 도로시 역할은 <웜 바디스> <라이트 아웃>에 나왔던 테레사 팔머가 맡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합니다. 폭력에 반대하여 집총을 거부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폭력의 수위가 굉장히 높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도하게 적나라한 묘사 문제는 멜 깁슨의 전작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아포칼립토>에서도 똑같이 지적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감독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아마도 전작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충실한 고증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것은 주인공이 해낸 일과 대비를 이뤄 그가 얼마나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서 기적을 만들어 냈는지 생생하게 보여 주는 효과를 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폭력 장면을 묘사하는 태도는 쓸 데 없이 집요하고 자세합니다. 다른 공포나 스릴러 장르에서 볼 수 있는 끔찍한 장면들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전장에서 총이나 수류탄에 의해 팔다리가 날아가고 화염 방사기 때문에 불에 타 죽는 병사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묘사하며, 심지어 일본군 지휘관의 할복 장면을 굳이 상세히 보여 주기까지 합니다.

개인의 신념을 지킨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적나라한 폭력 묘사로 풀어낸 데서 생기는 모순은, 이 영화의 진짜 주제가 무엇인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어떤 예술이든 내용과 형식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제작 의도는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이슈에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는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 거나 ‘이 참혹한 전쟁이 문제의 근원이다’ 라는 점을 환기시키는 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자기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간 끝에 성공한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분법적인 대결 장면을 펼쳐 놓는, 80년대 식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자유주의를 들고 나온 레이건의 시대에 유행했던 80년대 영웅 서사는 초인적인 영웅의 존재를 강조했습니다. 언제나 자신은 옳다고 믿는, 꺾이지 않는 신념을 지닌 이가 결국 승리의 영광을 얻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였지요.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가치나 생각을 희생함으로써 과업을 성취하는’ 요즘의 할리우드 영웅담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 <핵소 고지>는 ‘나는 내 신념을 지킬 자유가 있으니 누가 뭐라고 하든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식의 독선적인 극단주의를 부추길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 국가(IS), 미국의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 혹은 우리나라의 박근혜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신념도 이 영화의 데스먼드가 일으킨 기적처럼 보상을 받게 될 거라고 큰소리치고 다닐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데스먼드의 내적 고민과 갈등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적나라한 폭력 묘사에만 매달린 것이 정말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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