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도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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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9. 개봉

액션 영화는 선악의 명확한 대립 구도를 펼쳐 놓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흥미진진한 액션 시퀀스들을 선보이며 악의 무리와 싸워 이기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 핵심인 장르입니다. 관객들은 일상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을 해 내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되지요.

액션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럴 듯한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부류의 인물이든 영화 속에서 합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설정만 되면 누구나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빌빌거리던 왕따 소년이 훈련을 통해 무술가로 재탄생한다거나,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는 시골 노인이 갑자기 초능력을 얻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 영화계에서는 액션물처럼 관객의 판타지가 투영된 장르에도 사실성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검찰이나 경찰 등의 사법 기관, 권한을 남용하는 권력자, 악랄한 범죄자들이 단골로 등장하고, 일제 강점기나 역사상의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한국 액션 영화는 곧 조폭 영화’인 시기도 있었지요.

이 영화 <조작된 도시>는 현실에서는 백수지만 게임 세상에서는 최고의 실력자인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였던 권유(지창욱)는 예기치 않은 살인 누명을 쓰고 눈깜박할 사이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형무소에서 탈옥하는 데 성공한 그는, 게임 상의 팀원인 여울(심은경), 데몰리션(안재홍), 용도사(김민교), 여백의 미(김기천) 등과 함께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한판 승부를 벌입니다.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한 설정이지만, 이 영화는 잘 만든 할리우드 액션물 못지 않은 쾌감을 줍니다. 우선 리얼리티를 따지고 일일이 해명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페이스로 속도감 있게 쭉쭉 치고 나가면서 관객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전개가 돋보입니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공략집 대로 빠르게 플레이하여, 두 시간만에 엔딩을 본 듯한 느낌과 비슷합니다.

또한 억지로 다른 장르와 결합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흔히 한국 액션 영화에서는 다양한 관객층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파 조의 멜로나 불의에 항거하는 사회 드라마, 억지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등을 섞는 경우가 많지요. 이 영화는 그런 식으로 액션의 쾌감을 깎아 먹는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각본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이 영화처럼 현실성이라는 제약을 뛰어 넘는 것을 시도한 많은 한국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던 까닭은 무엇보다 각본이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었다면 더욱 탄탄한 각본을 짰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거죠.

이 영화는 그런 함정을 잘 피해간 편입니다. 특별히 새로움을 추구하지도 않고, 몇몇 과도한 설정이 거슬리긴 하지만 비교적 기본에 충실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미스터리와 스릴러 장르에서 으레 사용하는 방법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관객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잘 붙들어 놓습니다. 현실성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주요 인물들의 행동은 설정된 세계 안에서 충분히 개연성을 갖고 있습니다.

적어도 최근에 개봉한 다른 한국 영화 흥행작들처럼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저런 행동을 할까?’와 같은 의문을 계속 떠올리게 만들진 않으니까요. 만약 비현실적인 부분이 거슬리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을 대한민국의 대도시가 아닌, 일종의 평행 우주라고 생각한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웃어라 동해야>, <기황후> 등의 드라마 히트작으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각인시켰던 지창욱은 첫 영화 주연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곱상한 외모와는 다른 선굵은 연기가 TV보다는 영화 쪽에 더 어울릴 수 있다고 봤는데, 아직 섬세한 감정 표현 능력은 미숙하지만 액션이 가능한 젊은 주연급 연기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보폭을 넓혀 가고 있는 심은경과 안재홍을 위시하여, SNL코리아의 김민교와 김슬기, 관록 있는 베테랑들인 김호정, 김기천, 김상호, 우현 등의 조합은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주연급 배우들을 멀티 캐스팅한 영화들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영화의 재미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민천상 역할을 맡은 오정세의 연기는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상업 영화의 최대 목표는 제작비를 상회하는 흥행 수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관객을 많이 불러 모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각본을 선정하고, 인기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며, 극장의 상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영상과 사운드를 만드는 데 힘씁니다.

그런데 세계 시장을 상대로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와는 달리 한국의 상업 영화는 관객층이 국내에 한정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흥행에 실패하지 않을 만한 안전한 기획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명절이나 여름 휴가철 같은 대목에 개봉하는 영화들은, 영화를 자주 보는 2, 30대 관객들의 눈높이와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4, 50대 이상 중장년층 관객들의 평균적인 취향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모험적인 시도를 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영화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 영화 시장은 거의 포화상태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긴 하지만, 보편적인 재미를 갖춘 장르 영화를 만든다면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TV 드라마나 대중음악이 한류 붐을 일으킨 것도 국적을 막론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쾌감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장르의 다른 한국 영화들과는 달리, 2시간 내내 액션 영화로서 오락적 재미와 통쾌함을 선사하는데 주력한 이 영화 <조작된 도시>의 등장은 참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의미있는 흥행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한국 영화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와 장르의 영역은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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