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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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8. 개봉

한국 검사들의 생리를 잘 보여 준 영화로는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스폰서, 기자들과의 관계, 파벌 싸움, 출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경쟁 등을 잘 보여 주었지요. <내부자들>(2015), <검사외전>(2016), <마스터>(2016) 등 최근 흥행작들에서는 사회악과 맞서는 정의로운 검사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 주었습니다.

이 영화 <더 킹>은 출세욕에 불타는 젊은 검사가 20여년간 겪게 되는 영욕의 시간을 따라갑니다. 고교 시절 오로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왕’이 되기 위해 검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박태수(조인성)는 정말 열심히 노력한 끝에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검사가 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검사 일은 고단하기만 할 뿐 생색은 잘 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역 유지 아들의 범죄 건을 잘 무마해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면서 박태수는 출세의 기로에 섭니다. 바로 서울지검 전략부 부장 검사 한강식(정우성)의 라인을 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박태수의 학창 시절과 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도입부와, 한강식이란 인물의 대한 소개 및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권력을 누리는 모습을 다룬 중반부까지는 배우들의 매력이 잘 살아 있고 재치있는 장면들도 꽤 있는 편입니다.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 등에서 보여 주었던 한재림 감독의 장기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지요.

하지만 별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 나왔던 설정이 대부분입니다. 검찰이 하는 나쁜 짓들도 딱히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미 민낯이 다 까발려진 김기춘과 우병우 같은 실제 인물들의 사례가 있기 때문에 흥미도 다소 반감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정적인 대사와 상황, 유흥을 즐기는 권력층의 모습, 거리낌 없는 폭력 묘사 정도가 이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반 이후의 이야기 전개 역시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편입니다. 주인공 박태수가 몰락하는 과정과 마지막에 반등하는 방법이 딱히 흥미롭지 않고 비교적 단순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박태수 역시 악의 일원이었고 일신의 안녕만 추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보통의 관객들이라면 그에게 완전히 감정 이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나온 것보다는 더 처절한 실패의 경험을 하게 만들었어야 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오는 과정 역시 더 설득력 있게 보여 줬어야 합니다.

또한, 상황과 인물을 간단히 스케치하고 지나가는 몽타주 시퀀스와 내레이션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데, 많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달하기는 하지만 관객을 쥐락펴락할 만한 리듬을 창조하지는 못합니다. 시대 배경을 보여주기 위한 뉴스 자료 화면들이 너무 자주 삽입되어 있어 자연스러운 이야기 흐름을 해치기도 합니다. ‘굳이 이런 화면을 그 장면에 썼어야 했나’ 하는 생각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군 제대 이후 이렇다 할 영화 작품이 없었던 조인성은 이 영화로 화려하게 복귀 신고를 했습니다. 역할이 지닌 한계 내에서 최대한 여러가지 감정과 액션을 소화해 낸 것이 인상적입니다. 배성우, 류준열, 김의성 등 개성있는 조연들도 맡은 역할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 주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정우성의 존재감입니다. 권력 지향적인 검사의 전형을 조각 같은 외모와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훌륭하게 재창조했습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포커 페이스를 한 채, 다양한 희노애락의 감정을 내뿜는 그의 연기 덕분에 한강식이란 인물은 오래 기억될 만한 한국 영화 캐릭터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앞서 예로 든 <내부자들>, <검사외전>, <마스터> 같은 영화들은 전반적인 완성도는 제각각이지만 적어도 결말부에서 사회악을 처리할 때의 통쾌함은 확실하게 주고 끝났습니다. 그런 점이 폭발적인 흥행 성적으로 이어지기도 했지요.

그에 비하면 <더 킹>은 인물과 시대에 대한 주요 특징을 잡아 보여 주는 일종의 캐리커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악을 쳐부수는 데서 오는 쾌감을 주기보다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 보며 그것을 씁쓸하게 반추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박근혜 게이트가 온 나라를 들쑤셔 놓은 상태에서는 빛이 바랜 느낌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현실 앞에서 그간의 기억을 다시 돌이켜 본 상태이니까요. 현실의 답답함을 뚫어 줄 만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아무래도 이 영화가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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