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쟁탈의 한국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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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쟁탈의 한국사>, 김종성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2016. 11. 25.)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면서 늘 아쉬웠던 부분은 삼국시대와 그 이전의 고대사 부분입니다. 고조선, 부여, 동예, 옥저 같은 나라 이름과 그들의 특징에 대해 단편적으로 설명하고 끝내는 게 보통이니까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 과정 역시 시조의 탄생 설화를 소개하고,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들을 설명하고 지나갈 뿐, 삼국시대 이전 한민족의 역사가 어떠했는지는 알려 주지도 않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아직 우리나라가 국력이 약해서 그런 부분까지 신경쓸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이 없고, 고대사의 주무대가 북한과 중국 지역인 만큼 연구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지금까지도 국내 주류 사학계의 한국 고대사 연구 수준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고대사에 관한 한 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우리 민족의 역사 범위를 압록강 이남의 한반도 이상으로 넓힐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강단 사학은 아직도 일제가 짜놓은 식민 사관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 <패권 쟁탈의 한국사>는 고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역사를 국가의 흥망과 지배 세력의 교체에 초점을 맞춰 다시 바라보는 책입니다. 고조선 이래 우리 한민족은 여러 국가를 세워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 북방 유목 민족들과 힘을 겨뤄 왔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힘과 에너지가 작용했는지를 알아 보고 인과 관계를 꼼꼼히 따져 봅니다. ‘패권쟁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고조선부터 고려 때까지 분량이 전체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합니다.

전체 구성은 6부로 되어 있는데, 시대별로 동아시아와 한민족의 패권 쟁탈에 영향을 끼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뽑아내어 제목으로 삼고, 그와 연관된 쟁점에 관해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짧은 글들을 여러 개씩 묶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고조선과 고대 중국 왕조의 세력 변화를 다룬 1부에서는 ‘패권의 기반은 길 위에 있다’는 제목 아래 무역로의 변화와 사상 혁신이 판도 변화에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설명합니다. 또한 삼국의 약진과 신라의 삼국 통일을 다룬 3부에서는 ‘기회를 얻는 자가 패권을 얻는다’는 제목으로 주변 정세와 전략에 대한 판단이 삼국의 운명을 갈랐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식이지요.

이런 구성은 저자의 논지를 쉽고 명확하게 제시하여, 큰 부담없이 한국 역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도와 줍니다. <오마이뉴스>의 연재물 ‘사극으로 역사읽기’로 친숙한 김종성 시민기자(qqqkim2000)의 저서로서, 특유의 빈틈없는 논리와 읽기 쉬운 문장이 돋보입니다.

이 책에는 그동안 우리나라 주류 사학의 관점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세계 문명 교류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국제 무역로인 초원길, 비단길, 바닷길의 성쇠를 동아시아의 패권 변화와 연결시키고, 그에 따른 한민족 국가들의 흥망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방식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몽골 초원을 가로지르는 초원길이 주요 무역로였을 때는 거기에 직접 연결됐던 고조선이 강성하여 중국 한족을 압박했고, 한 무제 때 개척된 비단길이 부각된 이후에는 그에 접한 중국의 왕조들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했으며, 16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바닷길을 통해 국력을 키운 일본이 17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판도를 뒤흔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백제를 건국한 것이 주몽의 첫 아내였던 소서노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들, <고려도경>에 등장하는 용맹한 고려의 승군이 불교의 승려가 아니라 신라의 화랑이나 고구려의 조의선인 같은 신선교 무사들의 후예였다는 것, 그리고 세계를 지배한 몽골 제국의 100년 남짓한 짧은 전성기가 기후 변화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 등 흥미로운 대목이 많습니다.

또한, 국가의 현안에 대처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역사적 교훈을 모색하는 일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고대 왕조에서 서민 출신 정권이 나올 수 없었던 이유를 지정학적 위치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고려가 어떻게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자로 자주성을 지킬 수 있었는지 살펴 봅니다. 이제는 시베리아 철도로 바뀐 초원길과 두 개의 바닷길 –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바닷길과 환태평양의 바닷길 – 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맞이할 수도 있는 번영의 기회를 전망하기도 하지요.

한국사 하면 왠지 따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발굴해 내거나, 창의적인 견해들을 활발히 논의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주류 역사학계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기존 학설을 더욱 공고히 하는 근거들을 수집하는 데 주력하면서, 새로운 견해가 나오면 증거가 부족하다며 <환단고기> 류의 국수적 민족주의 환상담 같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니까요. 그럴수록 우리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점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데, 수십 년 동안 똑같은 견해를 유지하는 학문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이 책 <패권 쟁탈의 한국사>는 새로운 관점과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가지고 우리 역사를 재검토함으로써, 역사 공부의 재미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이제 막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부터 변치 않는 역사 해석에 질려 새로운 접근 방식에 목마른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부담없이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사도여느 분야만큼이나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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