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4. 개봉
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진은 귀여운 반려 동물 사진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과 좀 더 가깝게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개나 고양이의 사진은 언제나 환영 받습니다. 몇 주 전 트위터에 모 대선 주자가 관사에서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올렸는데, 그의 어떤 트윗보다 리트윗이 더 많이 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렇게 반려 동물이 인간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현상은 인터넷 공간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납니다. 이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바탕이 된 실화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영국 런던의 한 노숙인이 길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경험한 기적 같은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니까요.
11살 이후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해 온 제임스 보웬(루크 트레더웨이)은 런던의 명소 코벤트 가든에서 버스킹을 하며 겨우 연명하는 중입니다. 마약의 용량을 차츰 줄여 나가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또 다시 마약을 사용하여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그는, 담당 의사의 도움으로 임대 주택을 얻습니다. 바로 이 곳에서 길고양이 ‘밥’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자기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밥의 상처를 치료해 준 제임스는, 자신이 애완동물을 키울 형편이 전혀 못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밥이 자기를 너무 따르고 늘 곁에 있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디든 데리고 다닙니다. 영민한 밥은 어딜 가나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세상과 늘 불화만 일으키던 제임스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합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은 금세 몰입해서 빠져드는, 빈틈없이 잘 짜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 편히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일종의 체험 수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이 된 동명의 에세이는 2012년 영국에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내 어깨 위 고양이, Bob>(2013)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출간된 바 있지요. 물론 그 이전부터 제임스와 밥은 유튜브와 SNS 상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고 합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극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만들 때, 인물의 단점과 터무니 없는 실수 같은 것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를 기획한 제작자나 감독이 그 인물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그러기가 쉬운데, 인물의 좋은 면만 나열해서는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심심한 영화가 될 뿐이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부족한 점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대책 없는 노숙 생활,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밑천을 드러내는 나약한 정신력과 심한 감정 기복, 호감을 갖게 된 이웃집 여성 베티(루타 제드민타스)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마약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행동 등등 여러가지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다 보여 줍니다. 이런 약점들은 주인공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서, 일종의 성장 플롯을 구성하는 요소로 잘 활용됩니다. 제임스가 넘어야 할 마지막 장애물로 마약 중독 완치를 설정한 것 역시 좋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고양이 밥의 존재감을 충분히 살려 준 것도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등장할 때마다 아름다운 수염과 털을 잘 포착해 낸 촬영-조명이나, 사람 말을 진짜로 알아 듣는 것처럼 행동하는 영리한 모습을 잘 담아낸 연출이 돋보입니다. 종종 삽입되곤 하는 밥의 시점 샷은 그를 어엿한 중심 캐릭터로 대우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것입니다.
반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동물적 본능을 거슬러, 유전적으로 전혀 관계 없는 다른 생명에게 자기의 시간과 자원을 내주어야 하니까요.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반려 동물을 키우면서 공감 능력과 배려심, 책임감이 향상되는 경험을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도 비슷한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 주지만, 자신의 유전적 계승자인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일종의 확장된 자기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격이 좀 다릅니다. 물론 반려 동물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소유물 취급을 하거나, 다 커버린 자식의 대용물로 여긴다면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요.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고 안 좋은 일만 생길 때,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앞가림 하는 것만 해도 벅차서, 혹은 자존심 때문에 혼자서 어떻게든 해 보려다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이와 힘을 합치고 연대하며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한 종입니다. 누군가에게 자기 곁을 내 주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상대방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쏟는 노력들은 그 자체로 삶의 질을 높여 주며, 스스로의 내적 성장을 도모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요. 이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주인공 제임스가 겪은 일들이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함께 할 ‘누군가’가 꼭 인간일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