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4. 개봉
일본은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강국이지만, 오리지널 극장용 장편 같은 경우에는 질과 양의 측면에서 늘 미국에 비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화제작들이 출판 만화나 TV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들이었으니까요.
8, 90년대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의 명작 애니메이션들을 내놓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온 지브리 스튜디오는,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흥행작들을 내놓으며 일본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지켜 왔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만한 대가를 발굴하지 못했고, 많은 자본이 드는 극장용 장편 제작에 부담을 느낀 끝에 결국 2014년 이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계의 희망으로 떠오른 인물들이 바로 호소다 마모루와 신카이 마코토입니다. 각각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와 <초속 5센티미터>(2007)로 비슷한 시기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최고 흥행작들마저도 비슷한 시기에 내놓았습니다. 2015년에는 호소다 마모루의 <괴물의 아이>가 공개되어 흥행 가도를 달렸고, 2016년에는 신카이 마코토가 감독한 이 영화 <너의 이름은.>이 일본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2위를 기록했지요.
카페 하나 없는 시골 마을 신사(神社)의 후계자인 여고생 미츠하와, 도쿄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남고생 타키는 우연히 서로 몸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의 몸에 들어와 있고, 그 때부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는 꼼짝없이 상대방의 삶을 대신 살게 되는 식이죠.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으며 차츰 서로를 알아가게 된 두 사람은, 직접 만나 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서로의 일상에 도움을 주면서 우정을 쌓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타키는 미츠하에게 연락을 하려 해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어느 시점 이후로는 더이상 몸이 바뀌지도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인 <초속 5센티미터>나 <언어의 정원>(2013)이 지녔던 장점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정밀한 배경 그림과 그것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자연광의 효과를 뛰어나게 잘 살려낸 작화,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연출력, 그리고 매력적인 삽입곡들을 활용하는 능력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것은 각본의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100분 정도의 상영 시간을 잘 짜인 하나의 이야기로 매끄럽게 소화하지는 못한 편입니다. 미츠하와 타키가 품고 있는 서로를 향한 감정이 적절한 발전 단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다소 느닷없어 보일 때가 있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꿈 속의 기억에 의존하는 타키의 선택 역시 필연적이라기보다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만들어 낸 설정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또한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일본 소년 만화 풍의 유머를 가미한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런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학생의 신체를 성적 대상물로 보는 묘사’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부분이었습니다.
감독이 직접 밝혔듯, 이 작품의 제작 의도는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인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데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잊힌 삶과 생활을 다시금 떠올려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우리가 맺고 있는 현재의 인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할 일이라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묘하게 엇갈리는 주인공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 인물의 내적인 감정에만 집중했던 감독이,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로 시야를 넓힌 것은 확실히 발전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 중에서 타키가 미츠하에 대해 알아가는 것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깊은 공감을 표시하며, 그와 연대하기 위해 기꺼이 나서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밑거름이니까요. 정치 제도를 개선하고, 훌륭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내면에 공감 능력과 연대 의식이 결여돼 있으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9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보여 준 근본적인 한계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개인적인 잇속을 차리기 바빴을 뿐, 정작 국가가 필요한 시점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지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막장 수준으로 떨어진 공감 무능력자들의 민낯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탄핵 절차가 마무리되고 펼쳐질 대선 정국에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공감 능력과 연대 의식이 떨어지는 사람들, 구체적인 삶의 문제 대신 개헌이나 정치 세력의 이합집산을 논하는 무리들은 이제 분리 수거해야 한다는 것 말이죠. 이것이 바로 이 영화 <너의 이름은.>이 들려 준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가 한국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