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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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8. 개봉

일반적인 극영화에서는 과제를 부여받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그것을 해결하고 스스로의 성장까지 이뤄내는, 영웅 신화의 이야기 구조가 자주 채택됩니다. 어두운 극장에서 스크린과 일대일로 만나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매체이다 보니, 관객이 동일시할 만한 인물을 내세워 그의 성장과 모험을 뒤따르게 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고전적인 영웅 신화 구조를 그대로 따르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클래식 3부작은 루크 스카이워커와 한 솔로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두 인물의 성장담이자, 그들이 이뤄낸 은하계 전쟁의 승리를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프리퀄 3부작 역시 사상 최강의 제다이로 꼽혔던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성장과 몰락을 다룬, 추락한 영웅의 이야기였지요.

2015년에 개봉한, 에피소드 7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역시 앞선 시리즈들과 흡사한 전개를 보여 주었습니다. 성장하는 영웅, 상반된 캐릭터들이 겪는 갈등과 우정, 이전 세대의 희생, 부자 관계의 딜레마 같은 설정들이 만들어 내는 쾌감을 극대화하면서요.

하지만, 일종의 외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좀 다른 길을 걷습니다. 때는 에피소드 4편 <새로운 희망>의 바로 직전 시기. 제국군 수용소에 방치된 진 어소(펠리시티 존스)는 궁극의 병기 데스 스타를 만든 천재 과학자 겔런 어소(마즈 미켈센)의 딸입니다. 반군 지휘부에서는 겔런 어소의 행방을 찾아내 데스 스타 개발을 저지할 생각으로, 진을 빼내어 정보부 요원 카시안(디에고 루나)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겔런이 데스 스타의 약점을 심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 진과 카시안은, 지휘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설계도를 확보하기 위해 작전을 짜고 사람들을 규합합니다.

기존 시리즈와 가장 큰 차별점은 ’제다이’ 같은 특출한 능력자를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진, 카시안과 함께 모험을 하게 되는 맹인 무사 치루트(견자단), 베테랑 싸움꾼 베이트(강문), 드로이드 K-2SO 등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뛰어난 자질을 갖춘 캐릭터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제한적입니다. 서로 힘을 합치고 돕지 않으면 각 단계별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관객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어떤 특정 인물의 성장이나 업적이 아니라,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확보하는 데까지 이르는 단계별 과정을 풀어가는 방법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스타워즈 시리즈를 기대한 관객들은 약간 당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도덕적 당위와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영화 말미에 이르러 좀 더 나은 선택을 함으로써 성장을 증명하는 주인공의 모험에 더 익숙하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특별한 내적 갈등 상황에 놓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선한 의지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을 지닌 보통 사람들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감내해야 할 어려움과 고통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와 대의를 위해 서슴지 않고 나서는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30여분 동안 이어지는, 설계도 확보를 위해 싸우는 전투 장면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영웅적인 모습은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진 역할의 펠리시티 존스는, 에디 레드메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사랑에 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의 아내 제인 역할로 호평을 받으며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바 있습니다. 얼마전 개봉했던 <인페르노>에도 주연을 맡아 톰 행크스와 공연했지만, 그리 좋은 연기를 보여 주진 못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 표현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습니다.

카시안 역할의 디에고 루나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함께 출연한 <이 투 마마>(2001)로 베니스 영화에서 수상하며 국제적인 지명도를 높인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이 영화에서는 딱히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한 딜레마에 빠진, 좀 더 위태로운 느낌의 캐릭터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깊은 내면 연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캐릭터들이다 보니, 배우들이 이렇다 할 퍼포먼스를 보여 주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감독을 맡은 가렛 에드워즈의 연기 연출이 썩 좋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작인 <고질라>에서도 애런 테일러 존슨이나 엘리자베스 올슨의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럼에도 견자단과 강문 같은 베테랑 중국 배우들은 스스로 알아서 캐릭터의 특징을 만들고 거기에 디테일한 숨결을 불어 넣음으로써 가슴뭉클한 순간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두 배우의 존재감은 여러 캐릭터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입니다.

제국군이 만들었지만 생포된 후 반군 편으로 개조된 드로이드 K-2SO는 이 영화의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매사 비관적인 C3PO보다 더 가차없이 말하는 냉소적인 드로이드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계산을 뛰어넘는 헌신을 보여 주며 감동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는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내적 성장을 겪는 인물로서, 기존 시리즈와의 접점을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를 기술할 때, 위인들의 행적과 업적을 중심으로 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변곡점을 이뤄내는 것은 특출한 한두 명의 노력과 재능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수많은 일반 민중들의 노력과 염원을 받들어 그 뜻대로 실천하고 앞장섰을 뿐입니다.

지난 2016년의 마지막 몇 주를 불태웠고, 2017년 벽두에도 계속될 전국적인 촛불 집회의 열기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어떤 정치 지도자나 언론인도 이것을 이끌거나 좌지우지 하지 못합니다. 다만 국민의 염원을 읽고 그것을 받들 수 있을 뿐이지요. 이 역사적인 시기에 자신의 이해득실만 따지다 몰락한 정치 세력들의 말로는 반면교사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이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기존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뤘던 보통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을 재조명함으로써, 그런 인간사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곱씹을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비록 기존 시리즈 같은 식의 재미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며 충분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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