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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4. 개봉

유럽의 동화집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일의 그림 형제 동화집이나 프랑스의 샤를 페로가 쓴 동화집입니다. 그런데 그림 형제보다 약 200년, 샤를 페로보다 50년 앞서 민담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17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잠바티스타 바실레입니다.

그가 쓴 동화집 <펜타메로네>(2016년 국내 출간)는 10명의 이야기꾼이 하루에 1편씩 열 개의 이야기를 5일 동안 들려주는 형식으로 돼 있습니다.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의 구성과 형식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들려 주기 위해 순화되기 전의, 원색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등 유명동화의 최초 버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이 실려 있기도 하지요.

이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는 이 책의 첫째 날 이야기 중 세 편을 뽑아, 인접한 세 왕국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로 각색한 것입니다. 왕자를 낳기 위해 괴물의 심장을 먹은 여왕, 벼룩을 사육하는 재미에 빠진 끝에 공주를 괴물에게 시집 보내게 된 왕, 난봉꾼 왕의 연인이 되기 위해 젊음을 꿈꾼 노파 자매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독자적인 줄거리를 갖고 진행되며 다소 느슨한 방식으로 교차 편집되어 있습니다.

세 이야기 모두, 기괴한 설정이 만든 균열이 서서히 커진 끝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식의 구성을 보입니다. 여느 동화가 그렇 듯, 특별한 반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작용하고, 불길한 예감이 언제나 틀린 적이 없이 들어 맞지요.

전체적인 느낌은 영화로 읽는 동화책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 한 문장 한 문장을 차근차근 읽어 나가는 기분이 드는 느린 템포, 동화 속의 환상적인 삽화를 그대로 옮긴 듯한 화면 구성, 대사를 가급적 절제하고 인물의 행동과 표정으로 상황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하는 연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아하게 엮어 나가는 음악 등이 어우러져 그런 느낌을 만들어 냅니다.

그 중에서도 판타지의 특별한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선택된 로케이션 장소들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영화 전체가 이탈리아 각지의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시칠리아의 알칸타라 협곡을 비롯한 자연 지형들과, 풀리아의 카스텔 델 몬테 성 같은 중세 건축물들은, CG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 자체로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나폴리 폭력 조직의 세계를 다룬 <고모라>와 리얼리티 쇼를 통해 인생 역전의 꿈을 꾸는 남자의 이야기 <리얼리티: 꿈의 미로>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두 차례 받은 바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는 스타일이 돋보였는데, 이 잔혹 동화 아이템 역시 이야기 속 판타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도드라집니다.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배우들인 셀마 헤이엑과 뱅상 카셀, 토비 존스는 각각 주요 배역인 괴물의 심장을 먹는 여왕과, 호색한 왕, 벼룩을 사육하는 왕 역할을 맡아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 주고 있습니다. 존 C. 라일리도 작은 역할이지만 초반의 집중력과 흥미를 충분히 유지시켜 줍니다.

이 영화 속 세 가지 이야기의 공통된 주제는, 불가능한 욕망에 너무 집착하면 파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매달리다가 사단이 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까요.

인간의 욕망을 늘 과도한 것으로 보아 경계하는 철학 사조들이 있지만, 인류는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욕구를 지속적으로 추구한 끝에 발전하게 된 종입니다. 어제의 불가능한 욕망을 내일의 새로운 발견과 도약으로 연결짓곤 했던 것이 우리의 역사였습니다.

욕망과 탐욕을 구분하는 것은 언제나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현실적인 조건과 자격을 갖추고 잘 준비된 상태에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과, 아무 것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니까요.

각종 전횡과 부패로 점철된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족 및 그 부역자들의 악행을 탐욕이라 부르면서 모두가 치를 떠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 영화 속에 드러난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그런 자들의 결말은 언제나 파멸 뿐입니다. 이 어지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떠맡은 책무는, 그들을 제대로 단죄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는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