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 저주의 시작 Ouija: Origin of Evil

ouijap

2016. 11. 9. 개봉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미권의 일반적인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영매(psychic) 혹은 점쟁이(fortune teller)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사기꾼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를 찾아줘>를 쓴 길리언 플린의 최신 단편 <나는 언제나 옳다>나, <아가씨>의 원작자 세라 워터스의 <끌림> 같은 소설, 또 우디 앨런의 <매직 인 더 문라이트> 같은 영화들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영(靈)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면서, 누구든 기댈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이런 사기 행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부각시킵니다.

하지만 호러물에서 이런 종류의 영적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 등장하면 얘기가 다릅니다. 그들은 작품 속에서 사기꾼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악령에 지배당해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거나, 악령에 맞서 싸우는 퇴마사 같은 역할을 맡아 활약하게 되지요.

이 영화 <위자: 저주의 시작>은 호러 영화이면서도 가짜 영매 가족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1965년의 LA, 남편과 사별한 앨리스(엘리자베스 리저)는 두 딸 리나(애너리즈 바쏘)와 도리스(룰루 윌슨)를 동원하여 영적인 능력 없이 간단한 몇 가지 장치를 조작함으로써 손님들을 현혹합니다. 수입이 변변치 않아 고민하던 앨리스는 서양판 분신사바 놀이라 할 수 있는 ‘위자 보드’(Ouija board)를 구입하여 사업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려고 하죠. 그런데 ‘혼자 사용하지 말라’는 규칙을 어기고 밤에 혼자서 위자 보드 놀이를 한 막내 도리스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초반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이후의 전개가 특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오컬트 호러물의 전통적인 클리셰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 소녀가 악령에 들려 무섭게 변하는 것이나 악령의 시각적 디자인, 악령이 특정 공간에 얽힌 원한을 가진다는 설정, 언제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지하실 등 <오멘>이나 <엑소시스트> 같은 이 장르의 고전부터 <컨저링>, <인시디어스> 시리즈 같은 최근 작품들을 곧바로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닳고 닳은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꽤 근사한 공포 효과가 납니다.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고, 다음에 무슨 장면이 나올지 뻔히 아는데도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요.

이 영화는 일종의 고딕 호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건축물을 배경으로 등장 인물의 억압된 욕망이 투사된 비극을 으스스하게 그리는 장르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끝까지 살아남은 큰 딸 리나의 입장에서 영화의 줄거리를 검토하면, 끔찍한 사연이 있는 오래된 집에서 일어난 사춘기 소녀의 억압된 성적 욕망이 빚어낸 비극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기꾼 영매 가족에게 붙은 악령이 사람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읽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해주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중얼대고 속삭이면서 정신 사납게 한다는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점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하는 행동을 풍자적으로 비튼 것이니까요.

공포 영화는 서스펜스와 스릴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릴러 장르와 같은 맥락에 있지만, 이 장르만의 고유한 특징은 관객이 끔찍한 장면에 노출되었을 때 받는 정서적 충격을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슬래셔나 고어, 혹은 스플래터물에서처럼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오컬트 영화나 고딕 호러에서처럼 기괴하고 가공할 만한 가해자의 존재와 맞닥뜨렸을 때의 무서움을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들은 각각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통받는 피해자를 바라보며 느끼는 가학적 욕망, 그리고 끔찍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 괴로움을 느끼는 피학적 욕망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둘 중 어떤 방식이 우세하게 사용되느냐는 감독의 성향과 장르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큘러스>(2013)로 이름을 알린 이 영화의 감독 마이크 플래너건은 후자에 속합니다. 잔인한 살해 장면을 묘사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영화 속 캐릭터들이 보게 되는 가해자 즉, 귀신들린 도리스의 표정이나 악령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질리게 만들지요. 덕분에 이 영화는 생각보다 낮은 등급을 – 미국 PG-13 등급, 국내 12세 관람가 – 받기도 했습니다.

호러는 스릴러보다 기계적인 계산이 더 우선시되는 장르입니다. 인물의 내적 동기나 반응이 적절한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형식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는 설정만 있으면 되고, 공포 효과를 위한 효과적인 샷 구성이나 편집 타이밍을 고민하며, 특수 효과와 CG 기술을 감안해서 연기를 연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처럼 아주 단순한 설정과 적은 예산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이 국제적으로 볼 때 제작비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에서 북미 지역이나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한다면 아마도 호러 장르가 가장 적합한 선택일 것입니다. <폰>(2002), <분신사바>(2004)로 잘 알려진 안병기 감독이 이미 중국 시장에서 <필선>(한국 개봉명 <분신사바: 저주의 시작>)(2012) 같은 영화로 큰 히트를 친 사례가 있습니다. 일본의 호러 영화가 최근 20여년 간 국제적으로 각광받은 것에는 기본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장르라는 점이 한몫 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들어 한국 영화 흥행작들 중에서 호러를 표방하거나 그 요소를 지닌 작품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꽤 고무적입니다. 작년의 <검은 사제들>이나 올해의 <곡성>, <부산행> 같은 영화들이 좋은 예지요. 공포 효과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 위해 장르적 외형을 따온 축에 속하지만, 이들이 만들어 낸 흥행 성과는 예전의 <여고괴담>(1998)이나 <장화, 홍련>(2003) 같은 더 잘 만든 정통 호러물이 다시 나올 수 있게 하는 든든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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