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2016. 5. 20.)
제가 가장 좋아하는 SF 작가는 어슐러 르 귄과 이 책의 작가인 로버트 A. 하인라인입니다. 르 귄은 테마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논리 전개 방식 때문에, 하인라인은 특유의 터프하고 과감한 전개에서 나오는 통쾌한 맛 때문에 좋아합니다.
달에 가 보는 것이 소원인 고등학생 킵은 비누 회사의 경품 응모에 참가하여 그 소원을 이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가 받게 된 것은 중고 우주복일 뿐입니다. 우주복에 ‘오스카’라는 이름을 붙인 킵은 이 우주복을 수선하고 입어 보는 일에 점점 재미를 붙여 가던 중, 외계 우주선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하드 SF라 할지라도 미래의 발전된 과학에 대한 묘사를 늘어 놓는 작품에는 별 흥미가 없습니다. 래리 니븐의 <링월드> 같은데 나오는 획기적인 것이 아니라면요. 과학적 사실에 의한 추론과 논리 전개를 작품의 주요 요소로 삼는 쪽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우주복에 대한 자세한 묘사나 달에서의 탈출 시도 과정에서 나오는 상황 묘사 같은 것들은 좀 지루하게 읽은 편입니다. 참고로 하인라인은 실제 우주복 개발에 참여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주복 내부를 아주 세밀하게 잘 묘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인라인 특유의 박력 있는 전개는 돋보입니다. 과감하게 시공간을 건너뛰고, 단도직입적으로 핵심을 짚어나가는 데서 오는 쾌감이 상당합니다. 어떤 작가들은 너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뒤에서 적절하게 해명할 수만 있으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뭉텅뭉텅 생략하고 넘어가도 무리가 없다는 걸 이 책이 아주 잘 보여줍니다. 이야기의 재미 앞에서는 많은 것들이 용서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