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Doctor Strang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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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6. 개봉

마블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흥행 성적 뿐만 아니라 영화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도 다른 영화들을 압도하는 실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화에서 차용한 영웅 서사 구조를 충실히 따른 시나리오,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프로덕션 디자인,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액션 씬 등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기 때문이지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로 페이즈 3의 문을 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슈퍼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를 선보입니다. 그는 최강의 마법사로서 현실과는 다른 차원을 넘나들고, 시공간을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는 등 남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이후 MCU 영화들의 스케일을 더욱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는 원래 잘 나가는 신경외과 의사였던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마법의 힘을 갖게 되는 과정과, 영웅의 숙명과도 같은 악의 세력과의 대결을 다룹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오만하고 냉정한 그는, 치명적인 사고로 인해 망가진 손의 신경을 회복하지 못해 절망에 빠집니다. 그렇지만 수소문 끝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간 네팔에서 신비한 마법사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을 만나고, 그의 제자로서 수련을 시작하여 곧 엄청난 재능을 발휘하게 되지요.

전체적인 플롯은 MCU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교과서적인 영웅 서사입니다. 또한, 클라이막스와 결말을 위한 여러가지 복선들도 성실하게 잘 깔아 놓은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인 느낌은 예측 가능하고 심심한 모범생 같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시각 효과가 주는 쾌감 때문입니다. 공간을 왜곡하고, 시간을 되돌리며, 차원을 이동하여 벌이는 마법사들의 불꽃 튀는 대결이 아주 볼 만하거든요. 물론 이 영화의 비주얼이 완전히 새롭고 창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공간을 비틀고 왜곡하는 시각적 아이디어는 이미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에서 시도되었던 것이니까요.

이 영화의 감독 스콧 데릭슨 – 에단 호크 주연의 호러 <살인소설>의 감독 – 도 그 영향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셉션>에서는 그것이 인물들을 숨막히게 압박하는 느낌을 강조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패턴이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와 결합되어 더 복잡하고 끈덕지게 따라붙는 느낌을 주는 쪽입니다. 또한 액션의 합을 짤 때 공간의 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부분도 다른 점이지요.

그렇지만 이 영화를 3D로 보는 것이 확실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적절하게 사용된 아웃 포커싱이 3D 효과를 높여 주긴 했지만, 프랙탈 구조 자체가 주는 착시 효과만으로도 입체적인 느낌이 나기 때문에 2D로 관람하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 영화는 소리만 들어도 정확하게 공간을 구분할 수 있도록 사운드 디자인이 잘 돼 있는 편이어서, 생생한 현장감을 위해서라면 3D IMAX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2D라도 돌비 ATMOS가 지원되는 극장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기존 마블 영화와 확실히 다른 점을 꼽는다면, 연기력을 인정 받았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지명도 높은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덕분에 블럭버스터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한 편입니다.

오만한 괴짜 천재 역할에 베네딕트 컴버배치 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는 또 없을 것입니다. 영국 드라마 <셜록> 시리즈와 <이미테이션 게임>, <스타트렉 다크니스> 등의 영화에서 보여 준 매력을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에 듬뿍 담아 연기합니다. 틸다 스윈튼 역시 예술 영화와 판타지 블럭버스터 등을 오가며 쌓은, 그녀만의 신비하고 비밀스런 이미지가 에인션트 원이라는 캐릭터와 너무 잘 붙습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클로즈업을 가만히 지켜 보고 있으면 그 이면에 어떤 속내를 감추고 있을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한 때 에인션트 원의 제자였으나 반란을 일으킨 케실리우스 역의 마즈 미켈센은 미국 드라마 <한니발>에서 보여 준 특유의 서늘한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악역 다운 카리스마를 만들어 내고, 닥터 스트레인지의 연인 크리스틴 팔머 역을 맡은 레이첼 맥아담스는 특유의 호소력 있는 감정 표현으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노예 12년>으로 유명해진 치웨텔 에지오포와 미국 드라마 <마르코 폴로>의 베네딕트 웡 역시 안정적인 연기로 닥터 스트레인지를 뒷받침하죠.

여러 면에서 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떤 신기원을 열었다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안정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이야기 구조, 다른 영화에서 이미 시도했던 시각적 표현 방법, 그간의 연기 경력을 통해 자기만의 이미지를 구축해 온 배우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식이죠. 그럼에도 올해 개봉된 다른 영화사들의 어떤 슈퍼 히어로물보다도 더 재미있습니다.

마블은 자신들의 방식, 그러니까 대중에게 사랑받는 슈퍼 히어로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기존처럼 만화 컷으로 시작하지만, 곧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의 모습으로 이어지며 MCU 세계관을 강조하는 식으로 바뀐 새로운 마블 로고는 그런 자신감의 표현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로 주춧돌을 잘 놓은 ‘페이즈 3’의 후속작들이 어떻게 나오게 될 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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