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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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3. 개봉

우연한 기회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게 된다는 설정이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서 종종 등장하지요. 보통은 신원 확인이 용이하지 않았던 과거를 배경으로 하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개입하도록 하여 그런 설정이 말이 되게 만듭니다.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한 이 영화 <럭키>의 경우는 기억상실증을 이용합니다. 명품으로 휘감고 다니는 유명 킬러 형욱(유해진)은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립니다. 사고 당시 같은 목욕탕에 있던 단역 배우 재성(이준)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살을 생각하던 차에, 잠깐이라도 잘 나가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형욱의 열쇠를 자기 것과 바꿔치기 하게 됩니다.

이렇듯 초반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궁금증을 충분히 자극하지요. 하지만 어떤 이야기에서든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주어진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의 개연성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총동원하여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매력도 이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지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해진이 맡은 형욱 쪽의 스토리 전개는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중년의 킬러인 그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재성의 물건들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짚어나가는 과정은 자연스런 웃음을 자아냅니다. 머리의 기억은 잃었지만 몸의 기억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칼을 잘 쓰는 특기를 분식집 주방에서 발휘하고, 단역으로 불려간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멋진 액션 연기를 선보이며 비중있는 배역을 꿰차는 등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준이 맡은 단역 배우 재성 쪽에서 나옵니다. 그는 으리으리한 킬러의 집에 어리둥절해 하지만, 자신이 가로챈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데 너무 소극적입니다. 대부분 주어진 정보 이상을 알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편이죠. 그런 식으로 쉽게 쉽게 중반부까지 넘어가다 보니, 그는 매우 심심하고 평면적인 인물이 되어 버립니다.

원래부터 지질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 자신이 가진 능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단역 배우라지만, 배우를 꿈꾸며 살아온 세월이 있고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남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재성은 전혀 연기를 꿈꿨던 사람 같지가 않고 그냥 아무 특기 없는 루저 같습니다.

설정상 연기는 못하더라도 나름의 신념과 열정이 강하다든지, 아니면 보고 들은 것만 많아서 겉멋이 들어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코미디가 나올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포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각본이 아쉽습니다. 재성이 단역 배우라는 설정은 킬러 형욱의 캐릭터를 위해서만 활용될 뿐, 자신이 스스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두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가 동등한 재미와 개연성을 갖지 못한 것은 전체적인 영화의 재미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한 쪽 캐릭터의 진부하고 심심한 전개는 나름 괜찮게 전개되던 다른 쪽의 이야기를 흔들고, 그 결과 두 캐릭터가 엮여서 우여곡절 끝에 사태를 해결하는 결말부에 이르면 모든 것을 아쉬워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진의 편안한 연기는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코미디와 정극, 액션을 오가면서 보여 준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은, 기존에 조연으로서 보여 줬던 연기 패턴과는 또 달라서 매우 신선했습니다. 함께 연기한 조윤희와의 호흡도 좋은 편이어서, 두 사람의 멜로 감정을 무리없이 잘 살려 놓은 것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럭키>는 개봉 후 첫 주말까지 20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약 180만명)을 넘겼습니다. 유해진이 보여 준 존재감도 나쁘지 않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었고 주말 동안 1000개 내외의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품 자체의 힘이 떨어지기 때문에, 앞으로의 흥행 추이도 첫 주말만 반짝하고 이후에 별볼일 없었던 <아수라>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객들의 반응도 영화에 대한 최초 기대치가 어느 정도였느냐에 따라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명확하게 설정된 이야기의 목표와 나름 희망적인 스토리 라인, 그리고 호감형 배우가 만나 대중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고 그 결과 돈도 벌었습니다. 하지만 안이한 선택을 한 각본이 더이상의 성공을 막고 있습니다. 개봉 초반에 화력을 집중하여 화제 몰이에 성공하는 것 이상의 꾸준한 흥행 가도를 유지하려면, 언제나 그렇듯 좋은 시나리오가 필수입니다. 모두가 답을 알고 있는 이 숙제를 한국 영화계가 더 잘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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