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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8. 개봉

크고 작은 항공기 사고는 전세계를 통틀어 매년 200건 내외로 발생하고, 그 중에서 인명 피해가 생기는 것은 수십 건 정도입니다. 인천공항의 한 해 운항 횟수가 30만회 정도 되고, 미국 전역의 경우 300만회 정도 된다고 하니, 전세계의 운항 횟수에 비하면 비행기를 타고 가다 죽을 확률은 매우 적다고 할 수 있겠지요. 통계상 일상 생활에서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객기 사고는 한 번 났다 하면 인명 피해도 크게 나고, 사고 현장도 처참하게 보도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적잖은 두려움을 심어 주는 것 같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조금만 흔들리거나 돌발 상황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이거 사고 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단박에 떠오르니까요. 일반 승객도 그런데, 비행기 운항을 책임지는 조종사들의 경우에는 말도 못할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릴 것입니다.

이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소재가 된 ‘US 에어웨이 1549편 불시착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 이 비행기는 2009년 1월 15일,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 2분 만에 새 떼와 충돌하여 엔진 2개가 모두 고장나고 맙니다. 기장이었던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는, 공항 관제사의 제안대로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하기에는 고도가 너무 낮다고 판단하고 가까운 허드슨 강에 비상 착수하기로 결정합니다.

알려진 대로 그는 고도의 조종 기술과 침착함으로 실패 위험이 매우 높은 비상 착수를 무사히 해냈고, 이후 승무원 및 승객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그리고 주변 선박 및 구조대원들의 노력 등으로 단 한 사람의 인명 피해도 없이 사건은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장으로서 설리가 느낀 압박감은 상당했습니다. 사고 뒤에도 자기가 조종했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악몽을 계속 꾸고, 더 안전한 활주로 비상 착륙 대신 허드슨 강을 선택한 자신의 판단이 성급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았으며, 그로 인해 항공기 조종사와 항공 안전 전문가로서의 자기 경력이 이대로 끝나고 가족들의 생계도 어려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해야 했으니까요.

영화는 이런 설리의 내적 갈등과, 그의 상황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냉정한 추궁이 빚어내는 외적 갈등을 이야기의 주된 동력으로 삼습니다. 설리의 심리적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삽입된 플래시백들은 관객의 감정 이입을 돕고, 사고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재연하지요.

최근 들어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경우가 잦아진 톰 행크스는, 자신의 삶을 잘 관리해 온 전문가의 흐트러지지 않은 외양과 그 속에 숨겨진 내면의 갈등을 매우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40년간 자기 직무에 충실해 온 한 인간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표현하면서도, 손짓이나 눈빛 하나하나에 주인공이 당시에 느꼈을 법한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내지요.

사고 상황을 재연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점점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을 차근차근 대피시키는 승무원들의 모습은 자기들만 먼저 빠져 나오려 했던 세월호 선장 및 승무원들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조된 승객들이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죠. 사고 직후에 신속히 다가온 선박들과 구조대원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서는, 세월호 침몰 당시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음에도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분노가 치밉니다.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우리가 저만큼만 재난 대응 시스템이 훌륭하고 시민 의식이 있었으면 세월호 참사가 나지 않았을 거라고요. 그러나 세월호 사고 소식이 전파된 직후부터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약 100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시 확인해 보면, 우리의 초기 대응과 시민 의식도 뉴욕 시민들에 별로 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완전 침몰 직전까지 50여척의 민간 선박과 구조 헬기 3대, 항공기 1대가 사고 해역에서 승객들이 뛰어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현장에 신속하게 접근해 사람들을 실어 날랐던 통근용 페리선들처럼요. 구조를 담당할 해경도 사고 신고를 받고 곧 도착했습니다. 만약 구조선이 도착한 시점에 퇴선 지시만 제대로 내려졌다면, 10분 이내에 완전 구조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지요.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시스템과 시민 의식 때문이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사건에서는 아무리 곱씹어 봐도 상식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작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승객을 보호해야 할 선원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자기들만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 더이상 추가 구조 노력을 하지 않고 배가 침몰하는 것을 바라만 봤을 뿐 아니라 구조를 위해 입수하려는 잠수부들의 노력도 지연시킨 해경, 빠른 구조보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영상을 입수하는 데 더 열을 올린 청와대 관계자, 정부가 나서서 진상 조사를 해도 모자랄 판에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사사건건 방해해 온 정부. 아무런 인위적인 통제 없이, 이 모든 비정상적인 일들이 동시에 한 사건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가장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은, 수차례 보고를 받았다면서도 참사 후 몇 시간이나 지나서 한 공식 발언에서 ’구명 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왜 못 구하냐’는 식의 얘기나 하고 있었던 수준 미달의 대통령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눈치만 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관료들과 해경들, 자기 목숨만 챙겨 도망친 비겁한 승무원들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 놓고 ‘어렵지 않게 구조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우리들의 책임도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설리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판단이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렇게 철저히 사고를 조사하는 이유는 단순히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사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하여, 다른 항공기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렵게 구성된 특조위의 활동은 예산 배정 및 인력 확보, 정보 공개에 이르기까지 죄다 방해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공식적인 활동 기한마저 정부 부처의 자의적인 해석과 여당의 추가 입법 방해로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지요. 공교롭게도 오늘, 9월 30일은 바로 그들이 인정하는 특조위의 마지막 공식 활동일입니다.

사건 발생 2년 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제대로 된 진상 조사도, 유가족들의 마음을 풀어드리는 일도 하지 못한 세월호 사건의 해결에는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고, 사람의 생명이 무엇보다 귀하게 취급받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데 힘써야 겠지요.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바로 정권 교체입니다. 현 집권 세력의 과오를 철저히 따져 물어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은 노련한 기장의 침착한 판단도 중요했지만, 사건 해결에 관계된 모든 사람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기적’이 가능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