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2016)

DH_P

2013. 8. 3. 개봉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꼭 역사적 고증이나 사료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창작자의 의도와 필요에 따라 철저한 고증이 필요할 때도 있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어떤 방법을 쓰든 더 흥미진진하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이 영화 <덕혜옹주>는 동명의 소설보다 좀 더 과감한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으로 젊은 시절부터 정신병원 신세를 지는 등 불행한 개인사를 겪은 인물이지만, 그녀의 알려진 행적만 가지고는 도저히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곱씹는 전통적 의미의 사극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민족주의 판타지 영화가 된 것이죠.

영친왕과 덕혜옹주를 일본에서 빼내려는 가상의 망명 작전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현실성과 고증을 따지다가 놓쳤을 수도 있는 극적 재미를 조금이나마 살려냈고, 그 과정에서 덕혜옹주의 불행했던 개인사도 비교적 잘 담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딱히 흥미진진한 구석이 없이 밋밋하게 느껴집니다. 덕혜옹주라는 캐릭터에 도무지 감정 이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그저 구경꾼의 입장에서 별 감정의 기복 없이 담담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을 지켜볼 뿐이지요. 타이틀롤을 맡은 손예진이 여전히 압도적인 존재감과 검증된 연기력으로 열연을 펼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인물의 목표와 의지가 불분명하게 설정돼 있습니다. 강제로 일본으로 보내진 덕혜옹주는 조선으로 돌아오겠다는 꿈은 갖고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조직적인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겠다고만 말하죠. 그는 어릴 적 정혼자였던 장한(박해일)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돌아오게 될 뿐입니다.

또한 극의 초반부터 덕혜옹주가 안 좋은 일을 겪을 때마다 매번 등장하는, 감동을 짜내려는 듯한 샷 구성과 과도한 음악이 감정이입을 해칩니다. 도입부는 전체적인 설정을 잡고 인물을 소개하며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부분이 되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러질 않고 그저 초반부터 관객들이 덕혜옹주가 겪는 불운을 가엽게 여겨 주길 바라는 듯이 감정을 자극하려 애씁니다.

이런 식의 연출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비슷한 스타일로 반복되는데, 많은 경우 관객의 감정보다 앞서 나가기 일쑤여서 분위기를 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관객이 등장인물들과 함께 많은 일을 겪고 난 후인,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습니다. 복순(라미란)이 두들겨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덕혜 옆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장면이나, 덕혜가 한국 입국을 거부당하는 장면, 결말부의 공항 장면에서 복순의 얼굴이 잡힐 때 같은 몇몇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대표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따라서,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이 신파로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잘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관객을 감정 과잉 상태로 끌어 들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얘기겠죠.

그나마 이 영화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캐릭터가 바로 장한과 복순입니다. 관객들은 덕혜를 지키려는 이 두 사람의 노력과 애틋한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박해일은 오랜만에 자기의 원래 이미지에 가까운 배역을 맡아 차분하고도 단단한 연기를 선보이며 극 전체에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라미란 역시 다소 오버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진심을 담은 연기로 심금을 울리지요.

이 시대에 뜬금없이 덕혜옹주를 들먹이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이 영화의 기획 의도는 매우 단순합니다.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집단 트라우마를 건드려 흥행에 성공해 보겠다는 거죠. 이를 위해 일본과 친일파의 만행에 대한 적개심을 극대화하는 장면을 넣고, ‘국뽕’이라고 불릴 만큼 과도한 민족주의 정서를 깔아 놓았습니다. 이런 기획은 그대로 적중해서, 개봉 보름째인 지난 18일까지 43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성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역사를 다룬 또 다른 여름 시즌 흥행작 <인천상륙작전>에서도 똑같은 전략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영화 역시 한국전쟁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를 소환하기 위해서 북한과 인민군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으며, 투철한 반공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죠. 두 작품 다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는 희망을 찾지 못해 깊은 무력감이 점점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 속에 홧병처럼 분노를 쌓아 두었다가, 언제든 기회만 생기면 그것을 해소하려 듭니다. 당장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만 살펴 봐도 그렇지요. 화풀이할 상대를 찾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특정 집단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역사의 비극을 곱씹으면서, 피아 식별이 쉽고 단순한 갈등 구도를 지닌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에는 그런 심리가 반영돼 있습니다.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필연적으로 파시즘과 연결됩니다. 좀 더 건강한 사회라면 외면받았을 영화들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서, 확실히 한국 사회에는 변화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새삼 해 봤습니다. 물론 그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 주고 있는 현 집권 세력을 교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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