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가이즈 The Nice Guy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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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6. 개봉

장르 영화란 특정한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표현 방식을 공유하는 영화를 말합니다. 장르 규칙에 대한 흔한 오해는, 그것 자체가 창의성을 좀먹는 매너리즘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투적인 전개로 일관하는 질 낮은 장르 영화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뻔한 소재와 낡은 주제 의식이 문제이거나,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 문제가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장르 영화의 규칙과 필수적인 장면들은 감독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장르의 규칙은 수십 년에 걸쳐 대중성을 검증받은 것이니까요. 통찰력 있는 메시지가 담긴, 교과서적인 장르 영화는 국적과 시대를 초월하여 높이 평가받습니다. 장르 규칙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영화들 역시, 해당 장르의 규칙을 잘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게 됩니다. 이미 확립된 것을 비틀고 조롱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70년대에 등장했던 네오 느와르 영화의 장르 공식을 대놓고 위반하면서 관객을 웃기는 코미디 영화이니까요. 네오 느와르라고 하면, 흔히 필름 느와르라 불리는 40년대 하드보일드 탐정 영화들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작품들을 말합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긴 이별>(The Long Goodbye)(1973), <차이나타운>(Chinatown)(1974), <나이트 무브>(Night Moves)(1975) 같은 영화들을 꼽을 수 있겠지요.

네오 느와르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정의를 갈구하지만 타락한 사회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탐정이 등장하고, 고생 끝에 알아낸 사건의 진상은 복잡한 사회적 비리가 아니라 친밀한 인간 관계 – 주로 가족 – 안에서 벌어진 추악한 일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정의보다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탐정들이 등장하고, 끈질긴 추적과 조사보다는 우연의 일치로 문제가 풀리며, 개인의 비극보다는 사회 문제에 대한 논평을 시도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게다가 폭력과 성에 관한 묘사도 과감한 편이지요.

7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딱히 당시의 역사적 분위기를 고증하거나 실제 있었던 이슈를 끌어들이지는 않는 것도 특징입니다. LA의 뿌연 스모그, 급성장하는 포르노 산업, 당시의 패션과 음악적 유행 등 그 시절의 요소들을 뽑아 쓰는데, 그저 희화화 하고 웃기기 위해 사용할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자막은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이런 장르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비꼬는 투의 대사가 가진 말맛을 살리지 못했거든요. (처음 캐릭터 소개할 때 이상한 설명을 붙여 놓은 거부터가 거북스러웠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상대의 신경을 자극하고 놀리는 대사 다음에 날아오는 리액션들이 종종 오버스럽게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감독 셰인 블랙은 <리쎌 웨폰> 시리즈 1편과 2편의 각본가로서 <키스키스 뱅뱅>(2005)으로 감독 데뷔전을 치른 바 있습니다. 그 때 연출력을 인정받아 <아이언맨 3>의 감독을 맡기도 했었죠. 이번 영화는 자기가 가장 잘하는 장르와 스타일로 돌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매우 좋습니다. 러셀 크로우가 간만에 보여준 우직하고 직선적인 맨몸 액션도 반가웠고, 뺀질이 사기꾼 탐정 역할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은 정의롭고 고뇌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보다 훨씬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지요. 고슬링의 딸로 나와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 앵거리 라이스도 앞으로 크게 될 재목으로 보입니다.

장르는 제작진이 관객과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기반입니다. 관객들은 영화 관람 초반에 어떤 장르인지 파악하고 나면, 아무리 특이한 장면이나 표현이 나와도 장르를 기준점으로 해서 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니까요. 이 영화 <나이스 가이즈>의, 우연 가득한 사건의 연쇄가 꽤 즐길 만한 오락거리가 되는 이유도 바로 장르 규칙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장르 규칙을 무척 홀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초반 설정만 만들어 놓고 나머지는 공식대로 짜맞추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만의 비전이 확실하니 기존의 장르 규칙 쯤은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감독들이 많으니까요. 운 때가 잘 맞아 괜찮은 흥행 성적을 올리거나 평단의 찬사라도 받으면 자기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작업 방식을 계속 고수하게 됩니다. 그러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요.

수준 높은 장르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규칙을 무시하고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찍는 영화보다 만들기가 더 어렵습니다. 기존에 확립된 규칙을 만족시키면서도 창의적인 비전을 불어 넣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제작진의 역량은 앞으로 더 좋은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될 테니까요. 우리나라 영화인들이 완성도 높은 장르 영화를 만드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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