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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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16. 개봉

우리 모두에겐 감추고 싶은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들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덜 성숙했던 시절,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들끓는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던 일들 중엔 지나고 보면 참 별 것 아니었다 싶은 일들이 많지요.

그래도 그런 것들을 ‘흑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의 주관적 판단과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검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인생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여전히 자기만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오류에 빠져 있기 마련이니까요.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학급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인 주인공 선은 방학식 날 전학 온 지아를 만나게 됩니다. 단짝 친구가 된 두 아이는 신나는 여름방학을 보내지요. 여느 친구들처럼 감정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방학 막판에 지아가 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된 둘은 개학날 학교에서 재회합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의 관계는 예전같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 그 나이 또래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인 선이는 아이다운 주관적인 감정에 빠져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영화 속 갈등의 씨앗은 거기서 다 만들어지죠.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무척 안타까운 감정을 갖고 영화를 보게 됩니다.

아역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는 사실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손짓 하나, 눈짓 하나에 말 못할 감정을 담아내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거든요. 이만큼 자연스런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감독이 기울였을 노력과 세심한 배려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샷 구성과 편집 역시 그런 배우들의 연기를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잘 고안되어 있는 편이지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도입부와 결말부의 피구 시퀀스나, 인물들 간의 시선 교환이 빚어내는 긴장감을 잘 포착한 장면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영화의 초점이 문제가 전개되는 양상과 파국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어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조마조마할 수도 있습니다. 예측 가능한 결말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데서 나오는 긴장감이 상당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감독이 아이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 말고 어떤 의도를 갖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지에 대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단서는 선이가 자기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고, 어렴풋하게나마 해결 방법을 깨닫는 결말부까지 가서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조금씩 천천히 깨달음을 얻는 것이 자연스런 아이들의 방식이긴 할 겁니다. 매우 현실감 있지요.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까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자기 객관화 과정을 거친 성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좀 더 분명하게 보여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한계는 있지만, 이 영화는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들 중에서 단연 돋보입니다. 스스로 대단한 것을 가진 양 허세를 부리고, 장르의 탈을 쓰고 관객에게 사기를 치며, 화려한 영화적 기술로 부실함을 가리려고 하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솔직하고 당당하게 펼쳐 보이니까요.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인 윤가은 감독의 다음 영화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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