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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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화는 문화 상품으로서 기획됩니다. 해당 아이템이 어떤 관객층을 타겟으로 하는지, 어느 정도의 수익 – 흥행 수익 외에 영화제 진출 및 해외 판매 가능성까지 포함한 – 을 올릴 수 있을지에 따라 제작비 액수와 그에 따른 배급 규모가 결정되지요.

그래서 대박을 노리고 100억대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인 40억대 영화, 제작비 15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 수입가 1억 미만의 외국 예술 영화 등의 배급 규모가 각각 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애초의 계획대로 흥행이 되란 법은 없습니다. 많은 제작비를 들였지만 쪽박을 차는 경우도 많고, 작은 영화이지만 예상외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치와 만족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매년 천만 영화는 등장하지만 중간 규모 흥행작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화제를 불러 모으거나 영화적 쾌감을 주는 작품이 별로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한국 영화계의 진짜 문제는 기획 영화가 많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영화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개된 나홍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곡성>은 개봉 2주차에 관객 수 450만명을 넘기는 등 단숨에 흥행작의 자리를 꿰찼습니다. 재미있는 데뷔작인 <추격자>와,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던 <황해> 같은 감독의 전작들 때문에 초반부터 기대치가 높았었고, 먼저 본 관객들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화제작이 되었으며, 15세 관람가로서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었던 것 등이 흥행의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골 마을을 온통 피칠갑 하며 난장을 피우지만, 사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스릴러나 미스터리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해당 장르가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감정을 환기시키는데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샷 구성에서부터 이야기 전개 방식까지 두려움이나 긴장감, 수수께끼를 푸는 쾌감 같은 것을 주기 위해 면밀하게 계획되어 있지 않습니다.

장르적 쾌감에 대한 기대를 품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혹평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감독이 전통적인 장르 규칙을 무시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에 무지한 것인지 모르겠을 정도여서, 오히려 실소를 동반한 웃음이 나올 때가 많았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감독이 어떤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라고 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관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만약 주변에서 참혹하고 무시무시한 일이 계속 해서 벌어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속의 종구(곽도원)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더 이상의 비극을 막으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감독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인간의 짧은 지식과 경험 혹은 믿음은 세상 이치의 일부분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며, 그렇게 파악된 것을 진실이라고 굳게 믿으면 믿을수록 파멸에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영화에 뛰어난 점이 있다면 그런 주제 의식을 영화의 형식에도 잘 투영하여, 영화 속 주인공이 하는 경험을 관객에게도 똑같이 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해 보이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이 나열된 얄팍한 복선들, 이 장르도 되고 저 장르도 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어떤 장르도 아닌 이야기, 극단적인 표현이 난무하지만 말초적 자극 이상의 의미는 없는 장면들을 그냥 믿고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미궁에 버려진 느낌을 받게 되니까요.

이런 형식과 내용의 완벽한 통일성은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아쉽게 여겨졌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대결 시퀀스를 위해 결말부가 다소 억지스럽게 진행되는 <추격자>, 장르적으로 잘 만든 시퀀스들이 많지만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 덜컥거렸던 <황해>에 비한다면 이번 영화에서 감독의 연출력은 확실히 좀 더 나아졌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주, 조연과 단역 할 것 없이 모두 극한적인 상황까지 몰린 상태에서 이뤄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기준으로 평가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진이 빠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배우들 각자의 필모그래피에서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평론가들의 대대적인 호평을 받을 정도로 좋은 영화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앞서 이야기한 통일성 같은 부분도 애초의 기획이나 시나리오 단계에서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흔히 따르는 시행착오의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투자 확정 단계에서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나온 결과물보다 훨씬 장르적으로 잘 꾸며진 이야기였다는 말도 있고, 감독이 촬영장에서 최대한 여러 각도로 많이 찍고 나중에 편집할 때 샷을 선택하는 식으로 작업하는 스타일이라고 알려진 점 등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하지만 최근에 나온 한국 영화들이 전반적으로 만듦새가 떨어지고, 예술적 야심도 부족했다는 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 영화 <곡성>이 받는 관심이나 흥행 성공은 합당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관객들은 언제든지 볼 만한 한국 영화를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영화인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더욱 고민하고 분발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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