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녀시대 我的少女時代 (2015)

ourtimes_P

2016. 5. 11. 개봉

치정 사건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중장년층이나, 오글거리는 로맨스 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걸 재미있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드라마만을 위한 인위적인 설정을 남발하고, 의도가 빤히 보이는 클리셰가 넘치는 데도 말이죠.

한때는 사람들이 무지해서 그렇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오히려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해당 장르의 규칙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장면 전개도 손쉽게 척척 알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그런 드라마를 보는 걸까요? 비슷비슷하게 상투적인 드라마들 가운데서 히트작만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대만 영화로서 중국어권에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고 하는 이 영화 <나의 소녀시대> 역시, ‘꽃보다 남자’ 류의 뻔한 설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학원 로맨스물에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향수 마케팅을 더한 아주 전형적인 영화입니다. 감독을 맡은 진옥산은 ‘러빙 유’ 등의 드라마로 잘 알려진, 대만의 1급 드라마 작가이기도 하죠.

총평부터 말하자면, 예상했던 것보다 약간 더 오글거리고 90년대 홍콩 코미디 영화처럼 만화적인 톤이지만 꽤 즐겁게 보고 나온 편입니다. 설렘의 순간과 엇갈리는 시선, 감춰뒀던 마음의 진실이 얽히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거든요. 비록 영화 속에 삽입된 90년대의 중국어권 대중 문화 아이템들을 모두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만.

이 영화가 장르의 상투성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극의 논리에 무리가 없고, 플롯 포인트를 이루는 주요 장면들이 나름 신선한 방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리듬감 있는 전개가 돋보인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연쇄가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극영화의 기본입니다. 극을 만들어 가는 주요 인물들의 행동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 역시 말이 돼야 하지요. 물론 여기서 ‘논리’란 인물의 감정적 논리를 말합니다. 사람은 기계나 로봇이 아니니까요.

사실 이것만 잘해도 실패작이란 소리는 듣지 않습니다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장르에 따라 규격화된 플롯이 있기 마련인데, 거기에 캐릭터들의 행동을 설득력 있게 맞춰 넣기란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숱한 실패작들이 통과하지 못하는 첫번째 관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구성점이라고도 하는 플롯 포인트는, 극의 방향을 바꾸는 분기점이 되는 장면들을 이야기합니다. 잘 구성된 영화라면 이런 장면들만 이어서 이야기해도 영화 전체의 즐거리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본 지 한참 된 영화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면 거의 모두가 이런 플롯 포인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결정적인’ 장면들이 극 안에서 담당하는 기능은 장르마다 다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뻔한 방법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안됩니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그 영화만의 특별함을 주어야 하니까요. 이를 위해 감독과 작가는 해당 장면에 의미 있고 진실한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는 신선한 표현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장르물’을 표방하는 많은 영화나 시나리오들이 제일 쉽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개성적인 디테일을 추가하려 노력하고 기발한 대사를 만들어 내려 골몰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부분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건 어떤 어떤 장르니까 그냥 이렇게 가면 돼’, ‘이 장르는 원래 이렇게 끝나는 거잖아’ 하면서요. 그러니 관객들에게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요.

2시간 남짓한 길이의 장편 영화에서 음악적 리듬감은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영화적 방법을 동원하여 리드미컬하게 관객들을 쥐락펴락하지 않는다면, 캄캄한 객석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일대일로 마주하는 관객들은 갑갑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겠지요. 뛰어난 영화 감독들이 상당한 음악적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그러니 관객들이 어떤 영화를 보면서 지루하게 여기고 심지어 잠들기까지 한다면, 그 영화에는 일정한 리듬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훈련된 극소수의 관객이 아니면 캐치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숨겨져 있는, 소위 ’예술 영화’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이 영화의 장점을 되짚다 보면,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들의 부진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천만 영화는 거의 매해 등장하고 있고 몇몇 대표 감독들의 작품은 여전히 인상적이지만, 업계 전체로 봤을 때 전반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 상태거든요.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더이상 안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지요.

언론에서 손꼽는 몇몇 감독들이 최근에 내놓은 기대작들 마저도, 다른 한국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 정도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자신 있게 관람을 추천할 만한 수준이 못 됩니다. ‘한류’로 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는 대중음악이나 드라마에 비해, 딱히 화제를 불러 모으는 한국 영화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겁니다.

<나의 소녀시대>는 특이한 설정도 아니고 딱히 창의적이지도 않지만, 장르 영화로서 적절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영화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가만히 따져 보는 것은,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계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뻔한 대중 영화인데 뭘 분석하고 앉았냐’며 간과하는 사람이 많다면 파국은 생각보다 빨리 오고야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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