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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브루클린>은 미국으로 이민 온 아일랜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에일리스는 2차대전 후 피폐해진 고국을 등지고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떠납니다.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지독한 외로움과 향수에 힘겨워 하던 그녀는, 야간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이탈리아계 남자친구 토니를 만나게 되면서 점차 새로운 삶에 적응하게 되지요.

특별한 설정이 없는 전형적인 성장 드라마의 전개를 따르지만, 이 작품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마음을 잡아 끕니다. 비록 아일랜드 사람도 아니고 미국에 살고 있지도 않지만, 에일리스가 겪는 일들이 마치 우리 일처럼 느껴지거든요. 어느새 그녀의 설렘, 한숨, 기쁨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됩니다.

이런 마술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이 영화가 재현해낸 감정의 디테일이 워낙 설득력 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 작가 콜럼 토빈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은 영국 ‘옵저버’ 지가 꼽은 10대 역사 소설 중 하나로, 50년대 미국과 아일랜드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에피소드들로 꽉 차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닉 혼비는, 이 원작을 영화라는 매체에 맞게 효율적으로 잘 다듬어 냈습니다. 언제나처럼 서민 계급의 눈높이를 유지하면서도 품격 있는 위트,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를 풍부하게 담아내면서요.

에일리스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 역시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녀의 장점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나 고민을 단순하게 드러내는 장면에서 두드러집니다. 패턴화된 미소나 찡그림이 아닌, 진짜 사람이 짓는 사실적인 표정이 나오거든요. 또한 비슷한 표현을 하더라도 장면에 맞게 수위를 조절하는 노련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이미 영화 <어톤먼트>(2007)의 이야기 속 화자인 브리오니 역할로 불과 13세의 나이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녀는,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아역 시절 스타덤에 오른 많은 배우들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시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녀의 착실한 성장은 분명 귀감이 될 만한 것입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편입니다. 독설을 입에 달고 살지만 인간적인 하숙집 주인 키오 여사 역할을 맡은 줄리 월터스,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플러드 신부 역의 짐 브로드벤트, 아일랜드의 유지 아들로 나온 도널 글리슨 등 모두 충실히 자기 역할을 다합니다.

앤드류 가필드의 출세작 <보이 A>로 주목받았던 감독 존 크로울리는, 이 영화에서도 긴 호흡의 인물 단독샷을 사용하여 배우들의 섬세한 표현을 잘 담아냅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차분히 연기를 감상하면서 인물들에게 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몸 담고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때를 맞이합니다. 기존의 익숙했던 것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낯선 것들에 적응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과거에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유혹하기도 할 테니까요.

그러나 떠나온 곳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우리의 삶의 자리도 예전 그대로라면 돌아갈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럴 거라면 애초부터 출발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영화 속 에일리스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는 좋았던 기억으로 남기고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겪어야 할 일종의 숙명입니다. 보잘 것 없는 신체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번성하게 된 인류의 진화 과정의 핵심 사항이기도 하고요. 이 영화를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성장 이야기가 신화 시대부터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