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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3. 개봉

소위 ‘대박’ 나는 영화들에 대한 평가가 늘 좋을 수는 없습니다.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는 것은 가장 평균적인 관객들의 호응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평균이란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또한 영화평론가나 기자라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관객들에 비해 극단적으로 영화를 더 많이 보는 집단이라는 것도 박한 평가가 나오는 주원인일 겁니다. 게다가 이 영화처럼 스크린 독과점 논란까지 일으키는 경우에는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가 더 낮아지기 십상이죠.

이 영화의 흥행이 인기 배우 덕분이라거나 혹은 대진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겁니다. 관객 동원 능력이 있는 스타 배우가 선뜻 하고 싶어할 만한 시나리오와 제작진을 구축하는 것은 상당한 수고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배급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날 연휴가 대목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배급사의 경쟁작보다 조금이라도 더 괜찮고 재미있는 작품을 내놓는 건 노력의 문제이지 운이 필요한 일이 아니거든요.

먼저, 이 영화의 큰 강점은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죠. 주연을 맡은 황정민이나 강동원은 물론이고, 조연으로 나오는 이성민, 박성웅, 김원해, 김병옥 등도 각각의 역할에 충실한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특히 강동원, 이성민, 박성웅 같은 배우들은 최근 출연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정말 눈에 띄게 빛납니다.

이런 차이는 감독의 노력에서 나옵니다. 이야기 순서 대로 찍을 수 없는 영화 현장의 특성상 영화 배우들에게는 전체적인 캐릭터 톤을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숙제인데, 이것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우와 의사소통하면서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영화 감독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니까요. 이 영화의 감독은 그런 부분을 아주 잘 해낸 것이죠.

또한, 강동원의 다채로운 변신과 사기 행각도 즐거운 볼거리입니다. 배우의 노력도 있지만, 각본을 직접 쓴 감독이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자기 눈높이와 능력에 맞게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를 시도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한테 있지도 않은 사회 의식을 무리하게 집어넣는다거나, 너무 현실적으로 만들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것보다는 어쩌면 이런 허허실실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획이 다소 허술하고 또 너무 쉽게 성공하는 게 별로라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어쩌면 그게 오히려 현실에 가까운 것일 수 있습니다. 사기에 당하는 사람들은 치밀한 작전에 당하는 게 아니라, 이 영화에서처럼 쉽게 이득을 볼 수 있는 빠른 길을 찾으려다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자기 욕심 때문에 제 3자가 보기에는 ‘어떻게 저런 거에 속을 수 있냐’ 할 정도의 엉성한 논리에도 그냥 넘어가게 되는 거죠.

물론 이 영화엔 새로운 게 없고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장르 규칙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문제를 푸는 방식도 이런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클리셰에 가까운 것들이지요. 심지어 어떤 장면들은 다른 영화와 곧바로 연결됩니다. 황정민이 교도소에서 계속 린치를 당하다가 한 방에 상황을 역전시키는 과정은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1994)을 떠올리게 만들고, 강동원이 싸인 연습하는 장면은 아예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1960)에서 그대로 따온 거니까요.

그런데 사실 장르 규칙과 클리셰는 상업 영화에서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진행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도록 시간을 절약해 주고,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서스펜스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만 활용하면 극에 리듬감을 더해줄 수 있는 거죠. 빤히 보이는 클리셰를 마치 대단한 예술적 표현이라도 되는 양 힘을 줘서 화려하고 길게 찍는 게 문제지, 이 영화에서처럼 감독이 기본적으로 그런 효과를 잘 알고 적절하게 딱 필요한 만큼만 써 먹는다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만듦새는 비슷한 흥행 성적을 거둔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봤을 때 좋은 편입니다. 2시간 동안 별 생각없이 보고 나오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죠. 한국 영화계는 또 한 명의 괜찮은 상업 영화 감독을 얻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데뷔작의 성공에 취해서 이 영화처럼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를 또 들고 나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