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Steve Jobs (2015)

STVJOBS

2016. 1. 21. 개봉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각본을 맡은 애런 소킨은 언제나 ‘한 개인의 1차적인 관계가 사회적 성취에 끼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가 기획한 [웨스트윙]이나 [뉴스룸] 같은 TV 드라마에서도 그런 특징이 종종 드러나지만, 그의 영화 작품들에서 더 잘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저 멀리 [어 퓨 굿 맨](1992)이나 [대통령의 연인](1995) 같은 영화에서부터 최근의 [소셜 네트워크](2010), [머니볼](2011), 그리고 이 영화까지 말이죠.

이런 전략은 신화적인 당대의 실존 인물을 그릴 때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들의 드높은 성취도 실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할 법한 고민인, 연인이나 가족 관계에서 불거진 문제에서 나온 거라고 이야기한다면, 관객 입장에서 얼마나 접근하기가 쉽겠습니까? 그것이 실제 상황과 얼마나 가까운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작가가 하는 일이란, 실존 인물의 삶을 재료로 어떤 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느냐이니까요.

이 영화에서 애런 소킨이 관심을 갖는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인 문제는 혼외 자녀인 딸과의 관계 설정 문제입니다. 실제로 그는 1998년까지 혼외 자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고 하죠. 영화 속에서 84년과 88년의 실패가 계속되는 동안 잡스는 여러가지 문제를 드러냅니다. 특히 딸을 대하는 잡스의 행동은 문제가 참 많습니다. 피붙이에게 대한 사랑조차 자기 방식대로인 사람이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소킨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겁니다. 결국, 잡스가 98년 아이맥을 런칭하면서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초히트 행진은 그의 세계관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변화의 증거는 자기 딸과 진정으로 화해하게 된 그 순간이라는 거죠. 다만 잡스가 이뤄낸 성취를 암시하는 대사나 설정들이 꽤 나오는데, 그게 좀 아쉬웠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잘 알고 있는 것들이라 좀 낯간지럽더군요.

제가 연출자로서 대니 보일을 완전히 신뢰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입니다. 바로 [127시간](2010)을 보고 나서죠. 암벽 등반하다 바위 사이에 손이 끼어 127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는 사내 얘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번 영화 역시 애런 소킨의 쏟아지는 대사들에 휩쓸리지 않고, 감각적인 영상과 편집으로 최대한 리듬감을 살려냈습니다. 설정만 달리해서 똑같은 배우들이 세 번 연달아 등장하는 단막극 세 편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시나리오를 이만큼 효과적으로 스크린에 옮기기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틀 롤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는 중반부까지 이전까지 다른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 그러니까 까칠하고 욕구 불만이지만 댄디한 백인 남성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터틀넥 잡스’를 연기하는 후반부에서는 사뭇 다른 톤입니다. 사려 깊어진 중년의 내면을 드러내는 섬세한 표현이 아주 돋보입니다. 이전까지 보여줬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조연급으로도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아무래도 마케팅 담당으로 나오는 케이트 윈슬렛입니다. 날선 말을 내뱉다가도 부드럽게 회유하고, 또 어느새 단호하게 밀어 붙이는 등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을 한 시퀀스 안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합니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사람이 돼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어요. 올해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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