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The Revenant (2015)

TREV_P

2016. 1. 14. 개봉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마케팅) 컨셉에 대해 들었을 때, 기대가 꽤 컸습니다. 곰에게 중상을 입은 사냥꾼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남아 자기를 버리고 간 자에게 복수한다는 이야기, 정말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광대한 자연 환경, 생존을 위한 투쟁, 추적, 마지막 대결까지 다 나올 테니까요.

영화가 시작하면 그야말로 엄청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인디언들의 습격 시퀀스가 나옵니다. 이 시퀀스의 촬영 기술은 영화 역사에 남을 만한 수준이예요. 사운드와 음악을 믹싱하는 스타일도 창의적이고. 그야말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놓습니다. 그러나 인물 및 상황 설정을 무난하게 마치고 나서 주인공이 곰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에 이르면, 감독이 사실은 복수 이야기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듭니다.

만약 컨셉 대로의 복수극이었다면 주인공이 곰에게 당하는 장면이 이렇게까지 적나라할 필요는 없었겠죠. 그보다는 복수의 대상인 톰 하디가 얼마나 잔인하고 미친 놈이며, 그래서 복수했을 때 관객 또한 복수의 쾌감을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걸 알려 주는데 집중했을 겁니다.

그러나 ‘악역’ 톰 하디는 소위 극악하다고 할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저 남의 목숨이나 명예보다 자기 목숨이 훨씬 더 소중한 속물이고, 전형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인 정도? 어찌 보면 당시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의 선택은 오히려 합리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꼭 저놈을 잡아야 해, 보다는 결국 잡혀서 죽겠지, 하는 생각 정도 밖에 안 듭니다. 복수극으로 보자면 동력이 약한, 재미없는 이야기란 말이죠.

이 영화에서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해 볼 엄두가 안 나는 상황과 맞닥뜨린 인간의 처절한 실존적 투쟁입니다. 디카프리오가 영화 내내 주로 싸워야 하는 대상은 광대한 신대륙의 기후와 자연환경,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죽음이니까요. 감독과 촬영감독이 촬영 회차와 예산을 무리하게 늘려가며, CG로 배경을 붙이는 대신 로케이션 촬영을 고집하고 자연광만을 사용한 것,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과도한 촬영 테크닉을 시도한 것도 관객들이 주인공의 여정을 실감나게 체험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충분히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초기 세 작품, 그러니까 [아모레스 페로스](2000)-[21그램](2003)-[바벨](2006)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준 시나리오 작가 기예르모 아리아가와 완전히 결별하고, 처음으로 홀로서기 한 작품 [비우티풀](2010)은 이 영화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남자의 생존 투쟁이자, 자신의 환상과 기억을 끊임없이 끄집어 내는 영화이니까요.(개인적으로는 특별한 게 부족한, 다소 지루한 영화였습니다.) 전작인 [버드맨](2014)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지요. 커리어의 종말(=죽음)에 직면한 남자의 이야기이니까요. 굳이 묶자면 [비우티풀]-[버드맨]-[레버넌트]는 ‘죽음에 직면한 남자 3부작’이며, 감독의 주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영화들입니다.

사실, 이 감독이 자신의 예술적 야심을 위해 할리우드의 기존 제작 체계 및 관습과 맞짱을 뜨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것이 [버드맨]으로 작년에 아카데미의 환대를 받은 직후의 행보라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심지어 이 무모한 1억 3천 5백만불짜리 R등급 프로젝트가 흥행도 성공했습니다.(1월 31일 현재, 북미 1억 3천 8백만불, 전세계 2억 8천 1백만불)

문제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영화의 완성도를 해치는 것은 흔히들 지적하는 것처럼 과도한 테크닉 같은 것이 아니예요. 사실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과시적인 테크닉의 사용이나 지나치게 적나라한 묘사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감독의 의도 대로 효과를 거두느냐 아니냐가 문제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의 진짜 문제는 어줍지 않은 복수극 설정, 그리고 끊임없이 등장하여 흐름을 끊어 먹는 디카프리오의 플래시백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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