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WS-fAW

2015. 12. 17. 개봉

스타워즈를 처음 본 건 중학교 때 KBS에서 방영한 더빙판이었습니다. 이걸 비디오로 녹화해 놓고 심심할 때마다 돌려 보곤 했는데, 평소에는 티격태격 하기 일쑤였던 동생과 제가 이 영화 앞에서만큼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대사도 따라 하고 음악도 입으로 흥얼거리고 있더라고요. 제가 영화 일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이 때의 경험 때문일지 모릅니다. 영화는, 그걸 보는 순간만큼은 성격도 취향도 전혀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신기한 힘이 있는 매체이니까요.

그런 저에게 이번 스타워즈는 이십 몇 년만에 받은, 제대로 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리지널 3부작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ep4를 솜씨 좋게 재창조하여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 주었으니까요. 역시 ep4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영웅 서사였습니다! :)

40년 남짓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백인 남성 중심의 이야기를 여성-히스패닉-흑인 트리오의 이야기로 적절하게 바꾼 것은 아주 효과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작의 중심 주제인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멘토와 멘티의 관계, 주인공의 성장에 관한 것은 놓치지 않지요. 전작의 세부 사항에 대한 깨알같은 오마주들은 훌륭한 팬 서비스였고요. 심지어 3D 효과까지 좋아서, 제가 이제까지 본 3D 영화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감독을 맡은 J.J. 에이브럼스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 자신도 역시 스타워즈의 팬이다 보니, 팬들이 사랑하고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영화와 비교해서 조지 루카스의 프리퀄 3부작을 혹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속편이 유리하니까요.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원조 캐릭터들을 다시 한 번 써먹을 수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새로 들어 온 배우들 중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것은 레이 역의 데이지 리들리입니다. 신인급이지만 신체 훈련도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영화 배우라면 갖춰야 할 화면 장악력을 갖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끝나더라도 다른 영화에서 꾸준히 보게 될 좋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