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3. 개봉
연기, 촬영, 음악, 편집 등 여러 면에서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영화인 것은 맞아요. 특유의 느릿한 리듬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관객의 숨통을 조여가는 것 역시 대단하고.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놓치지 않고 봐 두어야 하는 영화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여성인 게 의도가 좀 빤히 들여다 보이는 설정이다 보니, 뒤로 갈수록 재미가 반감됩니다. 여성성에 대한 대중적인 편견을 무비판적으로 갖다 쓰는 것도 불편하고.
그러다 보니 결말부가 좀 아쉬워요. 감독의 전작인 [프리즈너스]나 [그을린 사랑] 같은 데서 보여줬던, 마지막에 가서 사고의 틀을 완전히 역전시키는 수준까지는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현실적이고 실제 상황도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다 그런 거지 뭐. 근데, 겨우 이런 결론에 도달하려고 그렇게 쪼아댄 거야?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질문이 연속으로 터져 나오는 것까지 잠재우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인물 설정을 다르게 하고 성 역할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여러 가지 대안들을 떠올리게 만들죠.
에밀리 블런트의 화면 장악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조막 만한 얼굴로 와이드 스크린 너머를 슬쩍 바라보기만 하는 샷인데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그녀가 아니라 다른 배우였다면 초, 중반의 미묘한 긴장감을 그렇게 팽팽하게 살릴 수 있었을까요. 이러니 그녀의 활약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중반 이후의 전개가 더 아쉬울 뿐입니다. 베니치오 델 토로야 뭐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려진 훌륭한 배우이니 딱히 더 이야기할 것은 없습니다. 누구나 기대하는 그대로의 연기와 클래스를 보여 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