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ob

2015. 10. 29. 개봉

전대미문의 기이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굉장히 야심차게 시작합니다. 주제도 명확하고 일관성 있습니다. 어떤 형식의 파시즘도 거부하겠다는 일종의 선언문 같은 영화니까요. 결혼도 독신주의도 진정한 사랑도 그것이 파시즘으로 바뀌는 순간 악몽이 된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 야심과 주제 의식을 뒷받침할 만한 극적 구성은 부족합니다. 전형적인 구성을 따르는 것도 파시즘에 굴복하는 것이 될 수 있으니 그것마저 하지 않겠다는 의도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자기만의 일정한 리듬을 가진 영화를 만들었어야 합니다.

관객을 긴 시간 동안 붙잡아 둬야 하는 장편 영화라는 매체의 핵심은 리듬입니다. 빛과 소리와 이야기는, 연출자 특유의 일정한 리듬을 통해야만 관객들과 행복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느린 템포의 영화라도 정확한 자기 리듬을 유지해 주기만 한다면 관객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중요한 순간에도 자꾸 엇박자를 내면서 삐걱삐걱 거립니다. 그 바람에 스스로 가치를 반감시키지요. 듣는 사람과의 호흡을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내려가는 강연 같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