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8. 개봉
이 영화의 원작 소설에는 문자로만 전달 가능한 감정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영화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 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옮겼을 지 궁금했지요. 배우고 싶었으니까. 근데 이런 제 기대와는 달리, 그런 부분은 별 고민없이 생략하거나 간략하게 보여주고 넘어가더군요. 이야기 줄기에 좀 더 집중하는 각색이었고, 연출도 캐릭터의 감정을 세심하게 매만지기 보다는 플롯을 중심으로 선 굵게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어차피 매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영화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까지 하려고 매달리면 영화가 산으로 갑니다. 그래서 감독이 나쁜 선택을 했다고는 볼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 가장 돋보였던 독특한 유머와 인간애가 많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다 보니, 재미가 반감된 것은 사실입니다. 원작에서 플롯만을 취한 탓에 ‘저렇게 난리를 치지만 때가 되면 어차피 구조될 건데’ 하는 식의 냉소를 이겨내기 힘든 것이지요.
할리우드 영화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중요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모든 장르에서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다루게 된 것이죠. 8,9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들은 장르 규칙과 플롯을 잘 지켰지만, 인종적, 사회적 배경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 관객으로부터 너무 미국적이라는 반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구조상 빼어난 반전이 없으면 찬사를 받기 힘들었죠.
그러나 21세기의 할리우드 영화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성장과 성숙, 변화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으로서 훨씬 보편적인 공감대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최근 들어 그런 경향은 가속화되고 있고, 글로벌 시장을 노린 영화일수록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 영화에 앞서 개봉했던 우주 영화들인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는 이런 면에서 정확하게 21세기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영화는 8, 90년대 스타일에 가까운 영화지요. 폭넓은 설득력에 신경 쓰기보다는 장르적 완성도와 미국의 주류 백인 남성인 감독 자신의 관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실 이건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장점일 수 있습니다. 솔직하고, 더 완성도 있어 보이고.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일이 결국은 재미와 감정적 만족감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일개 한국 관객인 저에게는 결정적인 단점으로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