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m

2015. 9. 3. 개봉

훨씬 더 큰 규모의 프로덕션에서나 볼 수 있는, 꽤 야심찬 떡밥들을 던지는 이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서 혼자서 약간의 흥분 상태에 빠졌더랬습니다. 분명히 앞으로 좀 더 스펙터클한 장면이 나오거나, 더 큰 스케일의 이야기가 진행될 것만 같거든요. 하지만 이 영화는 제작비 규모가 작은, 미국 기준으로 독립 영화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니 처음에 나온 장소와 배경에 머물면서, 남은 시간을 인물간의 감정적인 갈등 관계를 파헤치는데 쓸 수밖에요.

투 러버스 이후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돌아온 제임스 그레이는 이민자들로 들끓는 20년대 뉴욕 뒷골목을 서사적으로 그려내고 싶은 야심과, 그에게 허락된 현실적인 조건 사이에서 꽤 방황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근사한 세팅을 해놓고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등장인물들의 애증 관계 뿐이니까요. 또한 마리옹 꼬띠아르가 노출이 불가능한 급의 배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분명히 있었을 테고.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절대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 주인공들은 결국 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몰락을 보면서 관객들은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일종의 교훈을 얻고 영화관을 나서게 되니까요. 이 영화가 전작 투 러버스와 유사한 인물 구도임에도 그만한 감흥이 나지 않는 것은, 이번 주인공이 같은 구도의 남자 캐릭터가 아니라 여자 캐릭터이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변화를 거부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자기 뜻을 다 이루고 마는 주인공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자기 신념을 지키면 결국 보상을 받는다는 얘기는 우리가 사회화되기 시작할 때부터 늘 듣던 건데, 이걸 굳이 돈 내고 영화관 와서 볼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