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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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2. 개봉

영화적 재미의 원천은 서스펜스입니다. 서스펜스, 즉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죠. ‘예측 가능한 결과’와 그것이 일어나기까지의 ’의도적인 지연’.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의 압도적인 스크린과 풍성한 사운드는 서스펜스의 두 가지 필수 요소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상업영화에서 특정 종류의 플롯이나 서사 구조만을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는 이유는 ‘예측 가능한 결과’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영화의 기본 표현 기법으로 여겨지는 몽타주와 미장센의 주된 기능 역시 ‘의도적인 지연’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흥행감독으로 명성이 높은 최동훈 감독이지만, 저는 그의 영화들 중에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데뷔작이었던 [범죄의 재구성] 정도? 이전까지 최동훈 감독 영화의 특징은 재치있는 대사와 반전 요소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한계가 있었지요. 하지만 이 영화 [암살]은 영화적 재미가 탁월합니다. 왜냐하면 영화 전체가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포스터 카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친일파 암살 작전, 그들의 선택은 달랐다.’ 우리는 비극적 결과를 미리 암시해 놓은 포스터를 보고 극장에 들어가서 그 결과를 2시간 20분이 지난 후에 알게 되는 거죠. 본편 역시 같은 방식을 마지막 장면까지 고수합니다. 매 시퀀스마다 쉽게 쉽게 다음 장면이 무엇이라는 걸 알려주면서도, 결정적인 장면이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단 몇 초라도 지연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럴수록, 영화적 재미는 커지고 관객의 몰입은 더해가지요.

시사회로 이 영화를 먼저 본 기자, 평론가들의 반응이 별로였던 이유는 아마도 주요 반전이나 등장인물들의 비극적 운명을 미리 알려주거나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서스펜스 연출의 효과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탓일 겁니다. 반전 요소로 놀래키는 것보다,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고 그걸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걸 사람들이 잘 몰라요.

이번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감독이 그간 모든 작품을 같이 했던 최영환 촬영감독 대신 김우형 촬영감독과 새롭게 호흡을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김우형 감독의 카메라는 다소 긴 호흡으로 우직하게 보여주는 스타일입니다.(반면 최영환 감독의 스타일은 보다 빠른 호흡의 커팅이 주는 효과를 감안하는 쪽이지요.) 이번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와 감정선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했는데, 김우형 감독과 작업한 것은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기다려주는 카메라 앞에서, 이 영화의 모든 배우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 영화가 특별히 대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가질 만한 아주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니까요.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일제 시대를 살아낸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심정과 그들이 한 선택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어 진한 감동을 준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5부작처럼요. 을사조약 체결부터 광복에 이르는 40년의 세월 동안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다채롭게 펼쳐낸 기념비적인 소설 작품과 이 영화는 그렇게 서로 연결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 영화의 메가 히트가 우리나라 기득권층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얼마나 나라를 망쳐 왔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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