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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9. 개봉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주의하세요.

지난 20년간 픽사 스튜디오는 기발한 착상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세계 영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사람 머릿속의 감정 콘트롤 타워를 정말 멋지고 유머러스하게 구현하고 있지요.

그러나 픽사의 영화들은 늘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명확한 선악 대립 구도를 이야기의 동력으로 취하는 데서 오는 오류들 말이죠. 주인공의 실수나 원죄는 가볍게 넘어간다거나, 주인공을 방해하는 상대나 최종 보스들은 무조건적인 악으로 설정하는 식의 오류.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토이스토리1], [인크레더블], [카1] 등이 그렇습니다.

이분법적 선악 구도는 보통 인간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악인이 등장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악 판단의 기준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 시대에 정당했던 것이 2, 30년 후에는 완전히 부당한 것이 될 지도 모르니까요. 8, 90년대에 수작으로 손꼽혔던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들이 지금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1세기 들어 손꼽히는 수준의 할리우드 영화들은 과거만큼 이분법적 선악 구도를 남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혼란에 빠진 주인공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다루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는 추세죠. [인사이드 아웃]이 이전의 픽사 영화들보다 괜찮아 보이는 이유도 같은 이유입니다. 겉만 흉내낸 정도이긴 하지만요.

제가 보기에 픽사의 창작자들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 자만에 가까운 확신이 강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들의 세계관은 그저 미국이라는 나라를 주도하는, 양심적인 백인 중산층 계급의 생각일 뿐인데 말입니다. 이런 태도는 미국의 가족영화라는 범주 안에서는 특별히 문제되지 않겠지만, [겨울왕국] 같은 수준의 세계적 메가 히트작을 만드는 데에는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본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단편 애니메이션 [라바]는 그런 아쉬운 점을 아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남자 화산섬이 짝이 될 여자 화산섬을 고대하던 끝에 결국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인데, 화산섬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잘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럼 독신주의자나 동성애자는 어떻게 하지? 같은 질문이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거슬리거든요.

이 영화가 심심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주인공 라일리와 기쁨이 겪는 어려움과 고민의 크기가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고 느꼈는데, 그러다 보니 그들의 문제 해결 과정이 하나도 안 궁금했습니다.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겪는 문젠데, 정말 특이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결국 별 어려움 없이 해결될 것이니까요. (솔직히 그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은 사람에 따라서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겪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라일리가 외부 세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그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간의 연계가 생각보다 약했던 것도 이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었습니다. 시작-중간-끝만 연결되어 있을 뿐, 머릿속의 특이한 세계를 돌아다니는 기쁨의 여정이 어떻게 라일리의 사회적, 심리적 변화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는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영화는 기쁨이 여행하는, 사람 머릿속의 신기한 세상을 전시하는데 더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제가 제일 재밌게 보았던 장면은 라일리가 부모와 식사하는 장면입니다. 세 인물의 상호 작용과 실제 행동을 머릿속 콘트롤 타워의 상황과 연계해서 보여주는 그 장면 말이지요. 한 사람의 심리와 행동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걸 아주 잘 보여주었습니다. 에필로그에도 같은 식의 장면이 나와 즐거움을 줍니다. 왜 이런 장면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하지 않았는지 참 궁금해요. 정말 재밌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