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 개봉
’숏 텀 12’는 아동 학대로 제대로 양육을 받을 수 없었던 아이들이 잠깐 머무는 쉼터입니다. 이곳의 베테랑 직원인 크리스틴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쉼터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백한 시선으로 담아낸 것이 이 영화의 전부죠.
제가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아동 학대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태도 때문입니다. 보통의 대중 매체들은 가차 없이 잔인합니다. 최초의 뉴스 보도부터 시작해서, 대중 예술 작품의 소재로 각색되어 만들어질 때까지 선정적인 부분을 계속 부각시키니까요. 이런 방식은 당사자에게는 평생을 갈 지도 모르는 상처를 계속 들쑤시는 몹쓸 행위입니다. 계속 끔찍한 과거, 과거, 과거만을 계속 반복하니까요.
아동 학대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범죄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경우 사건 자체의 끔찍함에 대한 관음증적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국내 비평가들에게 호평 받았던 [한공주] 같은 경우가 그런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케이스입니다. 그 영화는 아예 집단 강간 씬을 이야기 구조상의 클라이막스로 잡고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과거의 아픔을 후벼파서 호기심을 끌기보다는, 이들이 현재 그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연 미래에는 좀 더 나아진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아픔을 함께 나누고 돕기 위해 그들이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과거의 상처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그들의 현재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학대 상황에 대한 묘사는 그저 선정적인 호기심만 자극할 뿐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관습적인 호기심을 몰입을 위한 장치로 이용합니다. 등장 인물들이 겪는 학대 상황에 대한 묘사를 한 번쯤은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의 기대를 활용해, 그런 장면을 보여줄 듯 말 듯하면서 끝까지 극의 긴장감을 유지해 나가는 거죠.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등장인물들의 원샷은, 제가 이제껏 봐 온 영화 속 어떤 장면보다도 가슴 아픈 장면들이었습니다. 말없이 우두커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겪고 있는 심적 고통과 정상적인 삶에 대한 갈망이 놀랄 만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벽 안에 갇혀 있던 그들이 벽 바깥으로 손을 뻗어 서로를 조금이나마 의지하기 시작할 때 희망이 싹트기 시작하고요.
몇몇 영화에서 색깔없는 조연으로 나왔던 브리 라슨은 아동 학대의 기억을 가진 쉼터 직원 크리스틴 역할을 맡아 훌륭한 내면 연기를 보여줍니다. 무표정한 얼굴 밑에서 움직이고 있을, 역동적인 감정들을 굉장히 잘 전달하더군요. 미드 [뉴스룸]의 짐 하퍼 역할로 잘 알려진 존 갤러거 주니어도 특유의 사려깊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든든하게 뒤를 받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