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y_P

2015. 5. 21. 개봉

이 영화의 시작은 폴 페이그 감독의 전작이자, 북미에서 크게 히트한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Bridesmaid, 2011)] 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주인공을 맡은 멜리사 매카시가 그 영화에서 FBI 요원이 되고 싶어하는, 이상하고 뚱뚱한 여자 역할을 기막히게 해냈거든요. 어쩌면 그 캐릭터를 발전시켜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이번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뚱뚱한 외모에 성적 매력은 하나도 없는 여자 캐릭터는 일반적으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죠. 그 때문에 이 영화는 초반 설정 단계에서부터 관객이 완전히 멜리사 매카시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스파이로서 출중한 능력을 가졌지만 인정받지 못했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도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꿋꿋하고 고운 심성을 가진 여자라는 것을 각인시키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신나게 영화를 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기존의 고정 관념을 뒤집은 캐릭터가 주연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이 영화처럼 스파이물의 상투적인 플롯을 그대로만 따라가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미드 [길모어 걸스]에서 로렐라이의 친구 수키 역으로 이름을 알린 멜리사 매카시는 스탠드업 코미디와 연극으로 기본기를 다진 연기파입니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린 것은 아무래도 2010년부터 시작하여 내년에 시즌 6이 확정된 시트콤 [마이크 앤 몰리(Mike & Molly)]입니다. 비만 커플의 사랑을 다룬, 이 엄청 웃기고도 로맨틱한 시트콤을 이끌어 가는 몰리의 ‘특별한’ 캐릭터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는 모든 짐을 멜리사 매카시 한 명에게만 지우지 않습니다. 액션 영화의 대표적인 마초남 제이슨 스태덤이 완전 허당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또한 미드 [데미지(Damages)]의 주연이었지만, 그간 영화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못 잡았던 로즈 번도 새침떼기 또라이 백만장자 상속녀 캐릭터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줍니다. 이들로 인해 영화는 배우의 개인기에만 의존하지 않는, 맛깔스러운 앙상블 코미디로 거듭나게 됩니다.

매드맥스도 그렇지만, 이 영화 역시 페미니즘 텍스트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007 같은 스파이 액션물에서 나온 여성 캐릭터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뒤집고, 남자 스파이들을 영웅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버리니까요. 또한 그것을 해내는 주체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늘씬하고 예쁜 여자가 아닌, 평범하고 친근한 스타일의 뚱뚱한 여자라는 것도 그렇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