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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4. 개봉

흔히 상업 영화에서는 관객이 캐릭터에 감정이입 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 관객과 캐릭터 사이에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니까요. 만약 코미디 영화에서 관객과 캐릭터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실수투성이 주인공을 보면서도 도저히 웃을 수가 없을 겁니다. 공포나 스릴러 장르에서도 어느 정도 거리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관객이 몰입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공포와 긴장감에 질려 미쳐버릴 테니까요.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극중 인물에 몰입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번갈아 가며 겪게 됩니다. 몰입의 순간에는 마음이 먼저 반응하지만, 거기서 빠져나와 캐릭터를 관찰하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머리가 먼저 돌아갑니다. 감독이 이 인물을 왜 이렇게 그리는 걸까, 그의 관점은 대체 무엇이며, 또한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면서요. 감독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설득력이 있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감독의 세계관에도 동의할 수 없고, 논리도 없는 경우일 겁니다. 그러면 바로 욕이 튀어나오겠죠. 이렇듯 감독의 세계관이나 치열한 논리는 예술 영화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상업적인 오락물에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서두가 길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측면에서 여러모로 실망스럽습니다. 감독인 노아 바움백은 10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반쯤 자전적인 영화 [오징어와 고래], 예술가를 꿈꾸지만 살아남기 위해 생활 전선에서 분투해야 하는 무용 전공자의 이야기를 다룬 [프란시스 하](리뷰 보기) 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겪는 모든 불행을 은연 중에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게 정말 맘에 안 들었어요. (원제목도 그런 뉘앙스를 풍기지요?) 그냥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과 사람들을 찾으며 기회를 엿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인 겁니다. 적성에 안 맞으면 다른 일을 해야죠. 주인공인 벤 스틸러 캐릭터는 자기 자신이 영화 일에 부적합한 인물임에도 시종일관 예술가인 척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않습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캐릭터가 잡히면 감독은 관객과 한 편이 되어서 저런 바보 같은 놈, 하며 함께 비웃어줘야 관객도 홀가분하게 웃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지가 않아요. 감독 자신의 모습과 가까워서 그랬는지, 기본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연민을 놓지 못합니다. 그러니 불편합니다. 가뜩이나 감정 이입도 안되는데 맘 놓고 웃지도 못하게 하니까요.

우디 앨런의 영화와 비교해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갑갑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양반은 자신이 직접 출연까지 하는데도 스스로를 신나게 비웃으면서, 우리에게 놀랄 만한 즐거움을 선사해 왔으니까요. 진짜배기 예술가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