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딥 블루 씨 The Deep Blue Sea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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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23. 개봉

영국의 유명 극작가인 테렌스 래티건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이미 1955년에 비비안 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지요. 매우 고전적인 삼각 관계 이야기지만, 2차대전 직후의 영국이라는 시대적, 사회적 맥락이 더해지면서 조금 색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귀족 계급의 판사 남편 대신에, 평민 계급의 공군 조종사인 일종의 나쁜 남자(?)를 사랑하여 집을 나갔다가, 몇 개월 못 가 그 사랑의 종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중산 계급 출신 – 아버지가 목사인 – 여자의 이야기이니까요.

이 작품의 특출한 점은, 주인공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면서도 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을 콕 집어 일방적인 가해자이거나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죠. 그러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감정과, 취향이나 계급의 유사성에서 비롯한 정서적 공감대 사이의 관계를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합니다.

흔히 사랑은 식게 마련이라고들 하지요. 그래서 이별 역시 변덕스런 사랑의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합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헤어지게 되는 경우 말이예요. 이 영화에는 두 가지 경우가 다 나옵니다. 두 경우 모두 이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상황을 오판하고 상대에게 매달리죠. 자기를 더이상 사랑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정서적 공감대로 어필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데도 여전히 사랑한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니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요.

인물들 간의 정서적 공감대를 시와 노래로 표현하는 이 영화의 방식 또한 특기할 만합니다. 주인공의 클래식 테마, 판사와의 공감대를 상징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공군 조종사와의 함께 등장할 때마다 펍에 흐르는 대중적인 노래들, 그리고 런던 대공습으로 방공호에 피신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영국 민요까지. 무대 공연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치로 고안된 것이겠지만, 영화로 만들었을 때에도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주인공들이 치열한 감정적 갈등을 빚어내는 주요 대화씬들은 숨소리, 목소리 톤, 작은 몸짓 하나하나까지 집중해서 보게 만들 정도로 밀도가 높습니다. 이 영화를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봐야할 좋은 이유이지요. 흔히들 극장에서 봐야하는 건 시각적 스펙터클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스크린과 독대하며 봐야할 장면들은 결국 이런 섬세한 감정 씬들이거든요.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라는 매체 혹은 예술이 오래 살아남는다면, 그 이유는 바로 인물의 내적 정서를 충실하게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레이첼 바이스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좀 더 볼륨감 있는 비비안 리처럼 보이는 그녀는, 정말 맘 먹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녀의 갈망과 헛된 기대, 새침한 거절, 절망적인 흐느낌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가 있지요. 그녀를 뒷받침 해준 사이먼 러셀 빌과 톰 히들스턴의 연기도 좋습니다. 특히 영국 연극계의 톱 배우인 사이먼 러셀 빌의 조심스러우면서도 성마른 연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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