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engers

2015. 4. 23. 개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영화의 메인 플롯은 기본적으로 하나입니다. 주인공이 적수의 위협으로부터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돌아오는, 영웅 서사 말이죠. 이 질리도록 반복돼 온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볼만하게 만드는 것이 블럭버스터를 만드는 사람들의 과제입니다.

그걸 위해서 가장 많이 써 온 방법이 바로 대규모 물량 공세죠. 지금처럼 CG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90년대까지만 해도 얼마나 더 화려하고 멋진 스펙터클을 보여주느냐가 흥행의 관건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기술력이 발전한 시대에는 그런 식의 스펙터클만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게 돼 버렸어요. 제작비와 시간만 충분하면 너도 나도 멋진 장면을 뽑아낼 수 있으니까요. 화려한 액션 시퀀스나 압도적인 화면은 이젠 그냥 기본 옵션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다 보니 다른 방법이 필요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근 5, 6년 사이에 두드러진 경향은, 캐릭터의 내적 갈등이나 등장 인물 간의 갈등을 다루는 서브 플롯을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개인적 고민이나, 주위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적절하게 버무려지면, 전형적인 영웅 서사로도 깊은 감동을 주는 영화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최근의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호평받는 이유 즁 하나도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서브 플롯을 활용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극이 전개되는 내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하니까요. 그 중에서도 어벤져스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 수가 많기 때문에 품이 몇십 배로 더 많이 듭니다. 캐릭터 각각의 내적 고민, 캐릭터 사이의 갈등 양상을 전체 이야기와 일일이 조율해야 하니까요. 이번 영화 역시 이 모든 것들을 140분 안에 담아내기 위해 믾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눈에 보입니다. 거기에다 전편보다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액션 시퀀스들도 여럿 들어가야 했으니, 각본-감독을 맡은 조스 웨던은 거의 씬마다 수를 놓는 기분이었을 거예요.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새로 투입된 캐릭터인 스칼렛 위치입니다. 그녀의 주술 때문에 주요 캐릭터들이 자기 내면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두려움을 경험하고 정신적 혼란을 일으키니까요. 그것은 울트론을 탄생시켜 메인 플롯의 씨앗이 되기도 하지만, 수퍼히어로들끼리의 반목을 표출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이들이 그토록 안간힘을 쓰게 되는 내적 동기로도 작용합니다.

그 덕분에 결말부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용을 쓰는 히어로들의 모습은, 값싼 휴머니즘의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눈물겨운 실존적 투쟁으로 격상됩니다. 저는 엄청 짠하더라고요. 어차피 악당을 처치하고 이긴다는, 답이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는데도 말이죠.

배우들 중에서는 스칼렛 요한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나 어벤져스 1편에서도 그랬지만, 이야기의 이면에 자리잡은 영화의 감정선을 단단하게 잡아주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보여주니까요. 그녀가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이 정도까지 뽑아내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헐크와의 멜로 라인은 로맨틱하다 못해 감동적이기까지 하지요.

액션 시퀀스도 1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과 양 모두 훌륭합니다. 아이디어도 좋고 시청각적 쾌감도 훌륭해요. 솔직히 1편에서 전투다운 전투가 있었나요. 막판에 겨우 나온 것도 돈이 좀 모자랐나 싶을 정도로 빈약했었지요. 이번에는 확실히 다릅니다. 액션 장면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맥스 아니면 일반 3D 조금 앞줄에서, 시야에 스크린을 최대한 담은 상태로 보는 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