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9. 개봉
개봉 전에는 이 영화가 이만큼 배급에서 소외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긴 휴 그랜트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 30대 이상의 관객들에게나 먹히는 배우가 되긴 했어요. 또한 이 영화는 데이트 영화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중년 남자가 새롭게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거든요. 열심히만 하면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10대나 20대의 패기와는 거리가 멀지요.
어릴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들만 만나도 상관이 없어요. 가만히 있어도 자기한테 연락이 오고,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요. 하지만 나이가 먹어가면 친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연락하는 사람도 적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예전보다 자신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으면서 의기소침해질 수가 있지요. 그래서 인간 관계의 폭을 좀 넓힐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각종 생활체육 모임이나 동창회 등의 주축이 중년 남녀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비슷합니다. 이미 15년 전에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영화의 각본가로서 아카데미 상을 받았던 그는, 후속 작업들이 부진한 성과를 내면서 작가로서의 경력과 가정 생활 모두를 망친 상태입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다 보니, 평소 경멸해왔던 대학 강의 자리를 에이전트로부터 소개받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게 됩니다.
그 중심에 시나리오 수업이 있습니다. 상업 영화 시나리오 쓰기가 그렇거든요. 다른 글쓰기와는 달리, 자신의 내면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해서도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취향과 비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갈등을 일으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반대 세력의 입장이 꼭 필요하죠. 많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자기 감정과 생각에 매몰되어, 반대 세력의 논리와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구성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시나리오가 막힐 때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끊임없이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는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삶도 새로운 사람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시작하게 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지요.
감독 마크 로렌스는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한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and Lyrics, 2007)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휴 그랜트와는 감독 데뷔작인 [투윅스 노티스](Two Weeks Notice, 2002)부터 네번째 작품인 이 영화까지 연달아 같이 작업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에 알았는데 그의 시나리오 작가 데뷔작이 바로 [마이클 J. 폭스의 스타만들기](Life with Mikey, 1993)더군요. 아역 배우 출신의 연예 매니저가 분투하는 이야기인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예요. 여러 면에서 이 감독의 작품 세계의 원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휴 그랜트는 많이 늙긴 했지만, 확실히 이런 철부지였다가 성숙해지는 캐릭터에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리사 토메이도 간만에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서 나쁘지 않은 연기를 보여줍니다.(다만 보톡스는 거슬립니다.) 또한 위플래쉬의 J.K. 시먼스, 미드 웨스트윙의 비서실장 앨리슨 재니, 90년대 코믹 조연 크리스 엘리엇 등이 개성있는 캐릭터들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