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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5. 개봉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 뒷편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의 소재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취하는 등장인물과 이야기 전개 방식은 1930년대의 백스테이지 뮤지컬에서 이미 완성되었죠. 예술적 야심에 불타는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는 여주인공, 그에 맞서는 경쟁자나 사랑의 훼방꾼, 실제 공연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얻게 되는 삶의 교훈 등이 그 기본 요소입니다.

이 영화도 그런 것들을 가져오긴 하는데, 이용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이 영화의 궁극적인 관심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자리잡은 후회와 두려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욕망에 있으니까요. 주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두려움이 없는 제작자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자기 마음 속의 어린아이를 고백하면서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분투하지요. 백스테이지 뮤지컬의 요소들은 그저 관객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칫 중구난방이 되기 쉬운 다양한 목소리들을 통일성 있게 결합하는 접착제 같은 구실을 할 뿐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너무 잔재주를 부리는 것 같아서 별로였습니다. 화제가 된 촬영 기법은 이 영화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스키가 칠드런 오브 맨에서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수준으로 보여줬던 거야, 어차피 백스테이지를 다루는 영화의 플롯을 그대로 따라갈 거면서 왜 이렇게 똑같이 안 가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냐, 드럼 스코어 좋긴 한데 너무 장식적인 것 같아. 이런 말들이 제 머리 속을 가득 채웠죠.

하지만 두 번째 볼 때는 그런 형식의 새로움에 익숙해진 상태라, 곧바로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감독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생각해 볼 여유도 생겼고요. 모든 이야기가 극장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상 커팅으로 바로 붙이면 호흡이 짧아지고 인서트 컷도 쓸 수 없기 때문에 롱테이크들을 이어붙이는 게 최선이었겠구나, 그와 더불어 나오는 드럼 스코어는 앞 시퀀스를 정리하고 다음 시퀀스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 즉 초밥 코스 먹을 때 입가심용으로 먹는 초생강 같은 역할을 하는구나, 수많은 계산을 통해 대사와 장면에 여러가지 의미와 설정을 정말 겹겹이도 쌓아놓았구나, 뭐 이런 식으로요.

마이클 키튼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코미디언으로서의 본능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하루에 열두 번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주인공의 감정을 탁월하게 잘 표현하거든요. 영화를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볼 때 느끼게 되는 쾌감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클로즈업된 배우의 내면 연기가 주는 것보다 핵심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 영화의 키튼이 그런 쾌감을 만끽하게 해주었습니다. 에드워드 노튼과 엠마 스톤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도 정말 매력적입니다. 이렇게 출연진의 연기가 고르게 좋은 영화도 요즘에 참 보기드문 것 같네요.